배리 엥글 GM 해외사업부문 사장
배리 엥글 GM 해외사업부문 사장
정부와 산업은행은 한국GM 지분에 대한 차등감자를 미국 제너럴모터스(GM)에 더 이상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한국GM의 주요 의사결정에 대해 거부권(비토권)을 갖는 쪽으로 GM 본사와 큰 틀에서 합의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정부와 한국GM에 따르면 정부와 산은은 GM 본사에 요구해 온 차등감자안을 최근 철회했다. 산은은 한국GM 부실에 대한 책임을 대주주인 GM 본사가 지고 기존 지분에 대해 20 대 1 등의 비율로 감자할 것을 요구했다. GM 본사가 이 같은 요구에 절대불가 원칙을 고수하자 정부와 산은은 기존 요구를 접었다. GM 본사는 한국GM에 빌려준 27억달러를 출자전환하는 것도 대주주로서 책임을 지는 것인 만큼 차등감자까지 할 수는 없다고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산은은 차등감자 불발 및 GM 본사의 대여금 출자전환에 따라 한국GM 지분율이 현재의 17%보다 떨어지는 것은 감수하기로 했다. 하지만 주요 의사결정에 대한 거부권은 반드시 확보하기로 했다.

정부와 산업은행이 한국GM에 대한 지분율(현재 17%) 유지를 포기하는 대신 거부권(비토권) 확보로 방향을 돌린 것은 GM 본사와의 협상에서 수세에 몰리고 있어서다. 차등감자를 요구했지만 GM 본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강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주장만 내세우다가 협상이 깨지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공감대가 정부 내부에서도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와 산은은 지분율이 낮아지더라도 거부권은 반드시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산은이 한국GM의 지분율을 사수하려 한 것도 결국 GM 본사가 한국 사업을 철수하거나 일부 매각하기로 했을 때 적은 지분으로 행사할 수 있는 제동장치가 없어서다. 비토권을 정하는 방식으론 한국GM 총자산의 20%를 초과하는 자산의 처분·양도 등 주요 결정사항에 비토권을 만들거나, 한국GM 정관상 주총특별결의사항(17개 사항)을 보통주 85% 이상 찬성으로 규정한 주총 비토권의 개정 등이 논의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거부권 없이는 자금 투입도 없다는 원칙을 재차 GM 본사에 전달했다”며 “여러 방식을 논의 중이지만 한국GM 총자산의 20%를 초과하는 자산의 처분과 양도, 또 지분매각 제한 기간 등을 두는 것 등에선 GM 본사와 의견접근을 이뤘다”고 말했다. 지분매각 제한 기간은 최소한 10년 이상이 돼야 한다는 게 정부와 산은의 생각이다.

다만 GM 본사도 대여금 출자전환 이후 산은 지분율이 1% 이하로 떨어지면 산은에 거부권을 줄 명분이 약하기 때문에 산은도 어느 정도 지분율은 유지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산은 관계자는 “GM 본사의 출자전환 이후 투입하는 신규 자금을 산은의 유상증자와 GM 본사의 추가 대출로 채우는 방법도 검토 중”이라며 “여러 안이 함께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산은은 GM 본사가 정부와 산은에 자금 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도 전해와 이를 받아들일지 고민 중이다. GM 본사는 운영자금과 인건비 등에서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고 보고 최근 이를 산은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 28억달러(약 3조원) 규모의 신규 자금과 관련해 산은은 이제껏 최대 5000억원 수준으로 지원이 가능하다고 밝혀왔지만 상황이 바뀌고 있는 만큼 투입자금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에선 앞으로도 정부와 산은이 GM 본사의 요구사항을 상당 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6월 지방선거가 다가오는 데다 지난달 실업률 지표도 안 좋게 나와 정부와 산은이 협상에서 운신의 폭이 좁은 상황”이라고 평했다.

박신영/장창민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