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 직원들이 지난 21일 서울 평창동의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자택에서 압수물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관세청 직원들이 지난 21일 서울 평창동의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자택에서 압수물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관세청이 지난 21일 한진그룹 3세인 조현아·원태·현민 남매의 자택과 인천공항 제2터미널 대한항공 사무실에 들이닥쳤다. 해외 신용카드로 물품을 구입한 뒤 관세를 내지 않고 국내로 무단 반입했는지, 이른바 관세 포탈 혐의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번 압수수색에는 관세청 조사관 30여 명이 대거 동원됐다. 관세청이 관세 관련 범죄에 자체 수사권이 있지만 이번처럼 재벌 총수 자택을 압수수색한 건 처음이다. 압수수색 당일이 토요일이어서 “조 회장 일가의 허를 찔렀다”는 얘기도 나왔다.

'한진 압수수색' 칼 빼든 검사출신 김영문 관세청장
22일 관세청에 따르면 조사관들은 ‘대한항공 내 밀반입 전담팀이 지속적으로 관세를 포탈했다’는 제보 내용을 집중적으로 따져보고 있다. 조 회장 일가가 공항 상주 직원 통로를 이용해 값비싼 가방과 양주, 가구 등을 무관세로 빼돌렸다는 게 제보의 골자다. 관세청 관계자는 “제보를 확인하기 위해 대한항공 직원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신분 공개를 극도로 꺼리는 바람에 압수수색 외에 방법이 없었다”며 “제보자들은 총수 일가의 탈세를 도운 공범으로 몰릴까 걱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관세청은 압수수색 이후 해외 신용카드 사용 내역과 압수 물품을 대조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카드로 고가의 물품을 구입한 뒤 세금을 내지 않은 사실이 확인되면 원칙대로 조 회장 일가를 차례대로 소환할 방침이다. 관세법 위반 사실이 드러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관세액의 10배에 달하는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재벌가(家)에 대한 이례적인 압수수색 배경엔 작년 7월 취임한 김영문 관세청장(사진)의 강단이 있다는 분석이다. 김 청장은 1978년 최대현 청장 퇴임 이후 39년 만에 지명된 검사 출신이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첨단범죄수사부 부장검사 등을 맡으면서 조직적 밀수와 마약범죄 수사를 많이 지휘했다. 관례적으로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또는 관세청 내부 승진자 등이 맡아온 관세청장에 수사 전문가가 부임하면서 관세청의 변화도 예고됐다. 관세청 관계자는 “밀수 의혹을 수사하는 건 관세청의 고유 업무”라며 “김 청장 취임 이후 관세법 위반혐의를 조사하는 수사팀에 힘이 많이 실렸다”고 전했다.

김 청장은 문재인 대통령과도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의 경남고 후배인 데다 문 대통령이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1995년 부산지검에 초임검사로 부임해 안면을 익혔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으로 파견근무할 당시 민정수석이 문 대통령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진그룹 오너 일가에 김 청장이 초강수를 둔 배경에는 청와대와의 교감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일부에선 관세청의 대한항공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겠느냐는 회의적 시각도 있다. 대한항공이 세관 공무원들을 장기간 ‘관리’해 왔다는 내부 제보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연말 등 행사 때마다 세관 공무원을 대상으로 공공연한 술접대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