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금융 검사·고금리 대출 억제책 지속
김기식은 갔지만 김기식표 정책을 의식하는 금융당국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낙마했지만 금융당국이 여전히 김 원장을 강하게 의식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의 낙마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보여준 금융개혁과 금융당국에 대한 불신이 김 원장이 2주라는 짧은 기간에 내놓은 몇 가지 정책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모습이다.

◇ 김기식표 정책 여전히 '진행형'
16일밤 김 원장이 사퇴하자 17일 오전 금감원장 대행인 유광열 수석부원장이 내놓은 첫 번째 메시지는 "삼성증권 배당사고나 신한금융 채용비리, 2금융권의 고금리 대출 관행 개선 등 각종 현안을 차질없이 진행해달라"는 것이었다.

금감원 내외부에선 전임 원장이 제시한 정책 과제를 빈틈없이 이행하라는 유 대행의 메시지를 이례적으로 받아들였다.

통상 원장이 떠나면 해당 원장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정책이 동력을 잃고 일종의 휴지기를 거쳐 다음 원장이 추진하는 정책이 탄력을 받는데 이런 공식과 달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감원은 김 원장이 지시한 신한금융 채용비리 검사 기한을 연장하며 의지를 천명했고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의 대출관행 개선 노력도 지속하기로 했다.

다음으로 금융권 인사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 부분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18일 회동이었다.

경제부총리와 금융위원장의 회동이 새로울 것은 없지만 두 인사가 사전 예고 없이 갑자기 만나 사진까지 찍으며 "금감원장 공석으로 금융혁신의 추진 동력이 약화하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는 것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김 원장은 갔지만 김 원장이 내건 금융개혁의 기치를 잊지 않겠다는 메시지라는 해석을 낳았다.
김기식은 갔지만 김기식표 정책을 의식하는 금융당국
◇ "금융개혁은 충격 필요한 분야"
금융권은 이미 떠나버린 김 원장이 내놓은 정책을 금융당국이 이처럼 소중히 하는 이유로 금융개혁에 대한 문 대통령의 불신을 꼽고 있다.

문 대통령은 김 원장을 둘러싼 논란이 정점을 이뤘던 지난 13일 금감원장 인선에 대해 해당 분야의 관료 출신을 임명하는 것이 "논란을 피하는 무난한 선택"이지만 "한편으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과감한 외부 발탁으로 충격을 줘야 한다는 욕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관료 출신이 주도하는 지금의 금융개혁이 그만큼 불만족스럽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과감한 외부 발탁으로 충격을 줘야' 할 만큼 개혁 속도가 미진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국무회의에서도 "중소기업·소상공인·창업자들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금융부담 경감을 위해 준비해온 금융혁신 과제들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 금융개혁 방향성 놓고 당국도 '혼돈'
문제는 현 정부가 바라는 근본적인 금융개혁의 방향성이다.

금융개혁이 미진하다는 목소리가 잊을만하면 나오는데 어떤 부분이 미진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보니 금융당국도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현 정권과 철학을 같이 하는 김 전 원장이 취임과 동시에 금융소비자 보호 기치를 내걸고 금감원의 정체성 등 문제를 들자 금융당국에서 이런 가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됐다.

김 원장은 취임사에서 첫 번째 과제로 금감원의 정체성 문제를 든 바 있다.

정책과 감독은 큰 방향에서 같이 가야 하지만 정책기관과 감독기관의 역할은 분명히 다르다고 규정한 바 있다.

이런 발언은 정책기관인 금융위가 정치·정책적 고려를 할 때 감독기관인 금감원이 제동을 걸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금융감독기구 체계 개편의 신호탄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금융개혁의 본질을 재벌개혁으로 보는 시각도 상당하다.

보험이나 카드사 등 상당수 2금융권 기업이 재벌그룹 계열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라는 의미도 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이런 측면에서 금융그룹 통합감독과 금융회사지배구조 개편 등 과제를 추진 중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