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의 ‘작업환경 측정보고서’가 국가 핵심 기술을 담고 있는지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가 판단을 유보했다. 고용노동부가 추진하는 보고서 공개에 대해 “국가적 중요 산업 기밀의 유출 우려가 커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한 산업부가 막상 민감한 결정은 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 반도체 환경 보고서' 국가핵심기술 결론 유보
산업부 산하 산업기술보호위원회 전문위원회는 16일 서울 모처에서 비공개회의를 열어 삼성전자의 사업장별·연도별 작업환경보고서 내용을 심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혁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위원장) 주재로 반도체 관련 교수들과 국가정보원·산업부 공무원 등 15명이 전문위원 자격으로 참석했다.

작업환경보고서는 삼성전자 온양공장뿐 아니라 기흥, 화성, 평택공장에 대해 수년간 작성된 공장의 배치도면, 생산라인별 근로자 수, 유해물질 목록, 화학물질 측정 위치 및 측정 결과 등을 담고 있다. 삼성전자 임원이 보고서 내용을 설명한 뒤 위원들이 질의를 했다. 삼성전자 임원은 이 같은 정보가 공개되면 공정별 면적과 설비 배치, 화학제품 등 영업 기밀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들은 보고서 내용이 산업기술보호법 차원에서 보호해야 할 ‘일곱 개 반도체 핵심 기술’을 담고 있는지를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다. 일곱 개 핵심 기술은 30나노급 이하 D램과 낸드플래시 설계·공정·소자기술 등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논의 결과 사업장별·연도별 작업환경보고서 내용이 방대해 많은 위원이 좀 더 구체적이고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며 “가급적 이른 시간 안에 전문위를 다시 열기로 했다”고 말했다.

산업부와 고용부 간 이견이 있는 상황에서 전문위원들이 ‘눈치보기’를 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반도체 공정의 일부라도 외부에 공개되면 중국에 추격의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할 우려가 있다”며 “보건이 아니라 기술을 전공한 전문가들은 대부분 보고서 공개에 반대하는 의견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위가 이날 결론을 미루자 삼성전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작업환경보고서의 첫 공개일이 오는 19일로 바짝 다가왔기 때문이다. 수원지방법원은 전문위 판단을 토대로 18일께 삼성전자의 보고서 공개금지 가처분신청 판결을 내릴 계획이었다. 산업부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국가 핵심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 전문위 2차 회의를 가급적 앞당기려 한다”며 “삼성전자가 제기한 가처분신청이나 행정심판 등의 일정을 모두 고려할 수는 없다”고 했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17일 상정할 예정이던 ‘삼성디스플레이 정보공개 행정심판’ 사건에 대해 “사안이 중대해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며 상정을 잠정 연기했다.

조재길/성수영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