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정부 출연사업에 대해 시행하는 사전 적격성 심사를 도입 1년 만에 폐기하기로 했다. 매년 증가하는 정부 출연금의 재정 누수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시행 효과도 충분히 파악되기 전에 사라지게 됐다. 각 출연사업 관련 정부 부처들의 반발에 기재부가 두 손을 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기재부 관계자는 15일 “올해부터 출연사업에 대해 사전 적격성 심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출연금은 법에 근거가 있어야 집행되기 때문에 이미 관련 법 제정 과정에서 적격성이 평가된다”며 “따로 기재부에서 적격성 심사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정부 출연사업 적격성 심사, 1년 만에 '없던 일로'
기재부는 지난해 3월 “총사업비 또는 5년간 재정지출 금액이 100억원 이상인 신규 출연사업에 대해 사전 적격성 심사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재부는 지난해 31개 신규 출연사업에 대해 사전 적격성을 검토해 고용노동부의 ‘민간참여형 장애인취업지원’, 교육부의 ‘대학 자유학기제 확산 지원’, 산업통상자원부의 ‘제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산업별 기반 구축’ 등 18개 사업을 부적격으로 판정했다. 이들 사업은 올해 예산이 배정되지 않아 추진이 무산됐다.

출연사업은 정부가 수행해야 하지만 직접 하기 어렵거나 민간이 하는 것이 효과적인 경우 법률에 근거해 민간이 대행토록 하고, 정부는 반대급부 없이 재정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73개 정부 출연기관과 각 출연사업 개별법에 근거해 설립된 민간기관이 수혜 대상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출연기관과 출연사업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정부 출연금도 함께 늘어났다. 2014년 30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34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2015년 감사원 감사에서 한국정보화진흥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한국인터넷진흥원 등이 출연금을 자체 인건비나 경상비 등 목적에 어긋나게 집행한 사례가 적발되는 등 ‘재정 누수’ 문제가 지적돼왔다. 이에 기재부는 지난해 사전 적격성 심사를 도입했다.

그러나 올해 출연사업 예산을 배정받지 못한 정부 부처들이 거세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전 적격성 심사는 자율성이 중시되는 출연사업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대두된 것으로 전해졌다.

사전 적격성 심사 폐지를 두고 기재부 내부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 부처들은 보조금과 달리 직접적인 관리·감독 책임이 없는 출연금을 선호한다”며 “정부 부처들의 도덕적 해이를 기재부가 나서서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전 적격성 심사에 대한 반대 근거로 제시되는 출연사업의 자율성 문제에 대해서도 이견이 나온다. 한 재정 전문가는 “출연사업은 집행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때문에 사후통제가 어렵다”며 “적격성 심사를 통한 사전관리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