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으로 직격탄을 맞았던 편의점에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3000~4000원대 도시락 판매가 급증하면서다.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외식물가가 큰 폭으로 오르자 직장인들까지 ‘편도족(편의점 도시락을 찾는 사람)’에 합류하고 있다. 업계에선 아르바이트생 임금 부담의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최대 피해업종으로 꼽혔던 편의점이 외식물가 상승의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성비 좋은 편의점 도시락

9일 업계에 따르면 GS25·CU·세븐일레븐·이마트24 등 국내 4대 편의점의 지난 1분기 도시락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6% 늘었다. 지난해 2500억원 안팎이던 편의점 도시락 시장은 올해 40%가량 증가한 3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2013년 779억원에서 5년 만에 4.5배나 늘어날 전망이다.

외식물가 상승이 매출 증가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햄버거 피자 김밥 등에 이어 8년간 묶여 있던 치킨값도 오르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여파다.
외식물가 뛰니… 직장인·택시기사도 '편도족'
잡코리아가 올초 직장인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외식비 평균 지출액은 점심 6682원, 저녁 9604원이었다. 편의점 도시락 가격은 3000~4000원대다. 저렴한 가격에 ‘집밥’처럼 먹을 수 있다는 게 도시락의 최대 강점이다. CU 관계자는 “과거엔 학생들이 주로 도시락을 먹었지만 요즘엔 직장인이 더 찾는다”며 “택시기사들도 많이 사간다”고 전했다.

편의점 도시락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가격 인상 압박이 있다. 하지만 동네 피자집, 김밥집, 분식점 등에 비해선 덜하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점포에 공급하기 때문에 인건비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다. 한 편의점 관계자는 “최저임금 1만원 시대가 오면 편의점 도시락의 가성비(가격 대비 품질)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청년 실업률 상승도 도시락 판매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청년 실업률이 9%를 넘은 2014년부터 편의점 도시락 매출이 급증했다.

밥 먹는 문화가 바뀐 것도 한 이유다. 1인 가구 증가, ‘혼밥족(혼자 밥을 먹는 사람)’ 확산이 도시락 판매 증가를 뒷받침했다. 특히 10~20대는 혼밥 도시락 먹기를 ‘놀이’의 소재로 활용했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인기 있는 도시락 사진을 올리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카페형으로 바뀌는 편의점

수요 증가세와 함께 품질 개선 경쟁도 시작했다.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편의점 도시락은 ‘제대로 된 한 끼’와는 거리가 멀었다. 편의점들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2013년 이후 시장이 커지기 시작하자 편의점들이 본격 투자에 나섰다. CU의 ‘백종원 도시락’이 대표적이다. 2015년 말 CU는 백종원 씨와 손잡고 도시락을 내놨다. 이 도시락은 나온 지 2주 만에 판매량 100만 개를 넘었다. CU는 횡성한우, 생연어초밥, 홍게딱지장 등 고급 재료를 도시락에 넣어 품질을 더 높였다. 세븐일레븐은 여기에 ‘11찬 도시락’으로 맞섰다. 도시락 반찬을 11가지나 구성했다. GS25는 고기를 잔뜩 집어넣은 ‘고진많(고기진짜많구나) 도시락’, ‘바싹 불고기 도시락’ 등 고기로 특화한 도시락을 선보였다.

도시락이 효자제품으로 떠오르면서 편의점 ‘풍경’도 바뀌고 있다. 세븐일레븐은 서울 역삼역과 남대문 세종대로에 ‘도시락 카페점’을 운영 중이다. 매장 크기를 키우고 인테리어도 카페 형태로 바꾼 편의점이다. 이마트24 충무로2가점은 2~3층을 카페처럼 꾸몄다. 매장에서 갓 지은 밥도 판다. 미니스톱은 앞으로 신규 점포를 낼 때 국내 편의점 평균 면적의 1.5배인 99㎡ 이상 매장만 열기로 했다.

안재광/이유정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