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여론에 등 떠밀려 조사한 사건들이 줄지어 무혐의로 결론나고 있다. 올 들어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 BBQ의 ‘광고비 부당 전가’, SK케미칼과 애경의 ‘가습기 살균제 위법 광고’에 이어 유한킴벌리의 ‘생리대 가격 부당 인상’ 사건도 혐의 없이 마무리됐다. 공정위가 외부 입김에 무리한 조사에 나서 헛발질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여론에 등 떠밀려 '칼' 휘둘렀는데… 공정위 조사 줄줄이 '무혐의' 결론
◆‘생리대 합리적 가격 인상’ 결론

공정위는 유한킴벌리의 생리대 가격 인상과 관련한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혐의를 조사한 결과 무혐의로 결론냈다고 4일 발표했다. 공정위가 2010년 1월부터 2017년 8월까지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가격을 인상한 140개 사례를 조사한 결과 72.9%인 102개가 가격 규제를 받지 않는 신제품·리뉴얼 제품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적인 가격 인상률도 재료비나 제조원가 상승률과 비교해 현저히 크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쟁사와의 담합 사실 역시 드러나지 않았다.

이번 조사는 2016년 ‘깔창 생리대’ 논란에서 시작됐다. 유한킴벌리는 당시 생리대 가격을 인상하려다가 ‘취약계층 청소년들이 신발 깔창을 대신 사용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여론이 악화되자 철회했다. 그러나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같은 해 국정감사에서 “유한킴벌리가 3년마다 생리대 가격을 대폭 인상했다”고 지적하며 논란이 확산됐다. 유한킴벌리는 “2010년부터 네 개의 신기술 제품을 세계 최초로 출시하는 등 제품 고급화에 힘쓴 결과”라고 항변했지만 공정위는 조사에 나섰다.

◆공소시효 지난 사건도 다시 꺼내

공정위의 ‘헛발질’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2월 가습기 살균제 라벨에 유해물질 정보를 은폐·누락한 혐의로 SK케미칼과 애경을 검찰에 고발했지만 지난달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이 나왔다. 가습기 살균제는 공정위가 2016년 8월 공소시효(5년) 만료 한 달을 앞두고 사실상 무혐의 처분인 ‘심의절차 종료’ 결정을 내린 사건이었다. “환경부가 살균제에 포함된 물질의 인체유해성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지난해 6월 김상조 위원장 취임 후 당시 사건에 대한 재조사 여론이 들끓자 공정위는 공소시효 만료 논란에도 불구하고 다시 조사에 들어갔다. 공정위는 “한 소매점에서 2013년 4월 문제의 제품이 판매됐다는 기록을 찾아내 공소시효가 올해 4월로 연장됐다”며 SK케미칼과 애경을 고발했다. 검찰은 그러나 SK케미칼과 애경이 제품 생산·판매를 중단하고 제품을 수거한 2011년 9월 범행 의도가 중단돼 공소시효가 2016년 9월 만료된 것으로 판단했다. 대형 로펌 변호사는 “회사 측의 범행 의도가 명백히 중단된 사안에 공정위가 무리한 잣대를 들이댔다”고 비판했다.

◆‘쓰레기 대란’도 조사?

공정위는 지난달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 BBQ의 점주들에 대한 ‘광고비 분담금’ 사건도 무혐의 처분했다. BBQ는 지난해 6월 자사 브랜드로 판매하는 치킨 가격을 인상하는 과정에서 가맹점에 광고비를 부당하게 전가한 혐의로 조사받았다. 당시 ‘외식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조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공정위는 조사 끝에 BBQ가 가격 인상에 따른 매출 감소를 막기 위해 정당하게 광고비를 늘리려는 목적이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최근 ‘폐비닐 사태’와 관련해 ‘쓰레기 수거 업체들을 조사해달라’는 민원이 빗발치자 공정위 직원들은 긴장하는 분위기다. 자칫 또 여론에 밀려 조사에 나섰다가 ‘헛수고’만 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공정위 관계자는 “경제 사건이 터지면 국민이 일단 공정위나 청와대 등에 ‘불공정 조사를 벌여달라’고 민원을 넣는 사례가 많다”며 “이런 사건이 계속 넘어오면서 공정위의 독립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내부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