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전문가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및 철강 관세 면제 협상에서 미국으로부터 철강 관세를 면제받는 대신 쿼터(할당량)를 받은 것에 대해 “나쁜 선례를 남겼다”며 비판했다. 미국의 수입 규제에 충분한 안전장치를 확보하지 못한 채 자동차를 양보한 것도 아쉬운 부분으로 지적됐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27일 ‘한·미 FTA 개정 협상,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주제로 한국국제통상학회가 연 간담회에서 “철강 쿼터의 문제점을 그다지 제기하지 않고 있는데 쿼터는 보호무역 수단 중에서도 가장 안 좋은 제도”라며 “쿼터를 언제까지 지켜야 하는지도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표인수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철강 분야의 쿼터 합의는 국제 통상 규범상 인정되지 않는데 한국 스스로 인정함으로써 다자간 통상 규범의 틀을 깨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며 “다른 국가들과의 협상에서 동일한 적용을 요청받을 경우 거절할 명분이 없다”고 설명했다.

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미국이 또다시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무시한 반덤핑 규제와 세이프가드를 꺼내거나 안보위기를 빌미로 일방적 보호무역조치를 시행할 경우 이를 억제할 구체적인 제도적 틀을 이번 협상에서 전혀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철강 면제와 연계해 자동차와 의약품 부문에서 미국 요구를 수용한 것은 단순히 협상 결과의 득실만 따진다면 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철강 관세를 면제받기 위해 너무 양보해서 ‘한국은 밀면 밀리는구나’라는 인식을 줬다”며 “앞으로 상당한 대가를 치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또 “처음부터 양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에 일부 동의하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하려고 시도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토론자들은 한국 대표단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비교적 빨리 협상을 끝낸 점은 높이 평가했다. 박천일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단장은 “협상을 신속히 일괄 타결함으로써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결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며 “기업들이 대미 수출과 투자전략을 더 안정적이고 체계적으로 마련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