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차 업계, "세계 자동차 시장 흐름과 역행하는 협상"
-미국은 미래 일자리 확보, 한국은 현재 일자리 보전

정부가 미국과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서 한국산 픽업트럭에 대한 관세 유지를 수용함에 따라 픽업트럭 진출을 계획 중인 국산차 업체에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를 두고 미국은 미래 일자리, 한국은 철강 업계 일자리를 유지하되 미국에 자동차 일자리를 내준 결과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한미 車 FTA, "현대차 픽업은 미국서 생산하라"

27일 한미 FTA 협상안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미국의 철강 추가 관세부과를 유예하는 과정에서 자동차 부문을 일정 부분 양보했다. 특히 미국이 픽업 시장 보호를 위해 요구한 한국산 픽업 트럭 관세 유지를 수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19년부터 단계적으로 철폐될 예정이던 한국산 픽업트럭에 대한 관세 25%는 2041년까지 유지된다.

이는 미국이 조만간 출시될 현대차 픽업트럭을 크게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게 국내 완성차업계의 중론이다. 현대차가 픽업의 주력 시장인 미국에 제품을 내놓으려면 미국 내에서 생산하라는 일종의 압박(?)이라는 것. 이를 통해 미국 내 일자리 확보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게 트럼프 정부의 생각이다. 만약 예정대로 픽업트럭 관세가 사라지면 현대차 입장에선 한국 또는 기아차 멕시코 공장을 활용, 미국에 판매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지만 관세 장벽으로 오히려 미국 내 생산이 유리해지는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로 현대차 입장에선 상당한 부담이 따른다. 현재 미국 내 공장은 앨라바마가 유일한 만큼 픽업트럭 생산을 위해선 공장의 추가 설립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추가 투자에 부담을 갖거나 픽업트럭의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판단하면 아예 픽업트럭 진출을 연기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며 "표면적으로 한미 자동차 FTA는 달라진 게 없지만 이면에는 한국차의 생산 공장과 일자리를 확보하려는 미국의 전략이 담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현대차가 픽업트럭 생산을 추진한다면 선택지는 미국 앨라바마 공장이 유일하다. 25%의 관세는 국내 생산, 수출로는 감당할 수 없는 높은 장벽이어서다. 지난 2015년 북미오토쇼에 첫 픽업트럭 컨셉트 '산타크루즈'를 발표하고 지난해 최종 양산을 결정한 현대차로선 생산 지역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형국이다. 다만 현대차는 "북미용 픽업트럭 관련 양산 일정이나 계획은 아직 어느 것도 확정된 바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미 車 FTA, "현대차 픽업은 미국서 생산하라"

현대차는 고민 중이지만 쌍용차는 북미 진출을 거둬야 하는 상황이다. 당초 쌍용차는 모기업인 마힌드라의 미국 공장 건설과 별개로 연내 미국 진출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이번 재협상으로 픽업트럭의 가격 경쟁력 확보가 불가능해지면서 사실상 수출을 통한 진입은 어려울 전망이다. 대신 마힌드라 미국 공장을 활용한 CKD 형태의 진출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아쉬운 것은 제조사뿐만이 아니다. 현대차가 픽업 트럭 생산 지역을 어디로 결정하느냐에 따라 국내 시장에 등장하지 않을 수 있어서다. 현대차가 픽업트럭을 국내에서 생산, 미국을 제외한 다른 지역으로 수출한다면 국내 물량을 따로 확보하는 게 어렵지 않겠지만 연간 2만5,000대 내외인 국내 승용형 픽업 시장 규모를 고려할 때 별도 생산을 하는 것은 수익 측면에서 얻을 게 별로 없어서다. 또 노조와의 암묵적 계약에 의해 미국 공장에서 생산한 픽업트럭을 역수입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와 관련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철강에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에서 생산하는 현대차의 가격이 1~2% 오르고, 이외 GM과 포드 제품도 함께 오르지만 픽업 트럭 관세를 유지하면 픽업 트럭 시장에 진출하려는 현대차의 공장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며 "일본에 철강 관세를 그대로 부과한 것은 일본차의 경우 이미 북미에서 픽업 트럭을 생산하고 있어 추가 투자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번 재협상을 통해 철강 부문의 피해를 막아 관련 산업 일자리는 지켰지만 앞으로 생겨날 자동차 부문의 일자리는 미국에 줄 가능성이 높아지게 됐다"고 덧붙였다.

오아름 기자 or@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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