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표자료 점검하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이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결과를 발표하기 전 실무진과 발표문을 살펴보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 발표자료 점검하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이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결과를 발표하기 전 실무진과 발표문을 살펴보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및 철강 관세 면제 협상 결과가 26일 나오자 국내 철강업계는 안도의 한숨보다 철강 수출물량 축소에 더 큰 우려를 나타냈다. 양국은 이번 협상에서 한국의 대(對)미국 철강 수출물량을 2015~2017년 평균 대비의 70%로 줄이기로 합의했다. 특히 철강 제품 중 대미 수출 비중이 가장 큰 강관은 절반을 줄여야 한다. 업계에선 “생산 공장의 미국 이전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으로 공장 이전 가속화”

지난해 미국에 수출된 철강 제품은 총 362만t이었고 이 중 56%(203만t)가 강관(파이프)류였다. 미국은 이번 협상에서 철강 품목별로 쿼터(수입 할당량 부과)를 설정했는데 강관은 104만t으로 설정됐다. 이는 작년 수출량의 51%에 불과하다.

미국에 강관을 많이 수출하는 업체는 중견기업인 세아제강, 넥스틸, 휴스틸, 하이스틸 등이다. 작년 35만t의 강관류를 미국에 수출한 휴스틸 관계자는 쿼터 설정 소식을 듣자 “가장 우려하던 시나리오가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산 강관에 반덤핑 관세가 부과되면서 2016년부터 작년까지 수출 물량이 줄었는데 이 기간을 쿼터 산정 기준에 포함했다”며 “강관 쿼터 104만t을 업체별로 어떻게 나눌지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넥스틸은 오는 11월부터 미국 공장을 가동해 강관을 생산할 예정이지만 그 전까지 ‘매출절벽’에 빠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 회사는 작년 유정용 강관에 46.37%의 관세를 부과받은 뒤 미국 수출 비중이 90%에서 40%로 떨어졌다. 회사 관계자는 “관세 면제 효과가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일부 업체는 발 빠른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이휘령 세아제강 부회장은 “미국 공장 가동률을 높이거나 증설하고 장기적으로는 현지 기업 인수합병(M&A)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세아제강의 대미 강관 수출량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연간 50만t 수준이다.

다만 미국에 판재류를 많이 판매하는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은 안도하는 분위기다. 판재류 쿼터는 전년 대비 111%로 오히려 늘었다.
관세폭탄 대신 수출제한… 철강업계 "관세면제 효과 사라졌다"
◆반덤핑 관세 부과 투명하게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번 FTA 개정 협상에서 미국의 반덤핑 조사 등이 남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를 마련한 것을 성과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불리한 가용정보(AFA)’ 등 미국이 해외 기업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 위해 사용하는 반덤핑 조사기법 등의 절차적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한 것이 대표적이다. AFA는 미 상무부가 상대국 기업이 충분히 협조하지 않았다고 판단하면 고율의 관세를 매기기 위해 이용하는, 제소자인 미국 기업이 제출한 불리한 정보다.

정부가 당초 ‘레드라인’으로 설정한 농산물 개방을 막아낸 것도 성과다. 김 본부장은 “미국이 농축산물 시장 추가 개방을 집요하게 요구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중국과 ‘통상전쟁’을 벌이는 미국이 미국 편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냐는 질문엔 “그런 요청은 없었다”고 답했다.

◆미국산 신약 값 오르나

미국은 한·미 FTA 개정 협상에서 미국산 신약의 가치를 인정하는 쪽으로 한국의 건강보험 약값 제도를 개선해달라고 했고 한국은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 정부가 시행 중인 ‘사용량 약값 연동제’는 애초 예상보다 약이 시장에서 많이 팔리면 보험재정 분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사후에 약값을 강제로 깎는 제도다. 외국계 제약사들은 이 제도가 혁신적 신약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보건복지부는 이들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면 약값이 인상돼 환자의 경제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반대해왔다. 복지부 관계자는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추가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이태훈/안대규/박재원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