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앞줄 왼쪽 첫 번째)이 지난 1월 일자리 관련 부처 장관들과 함께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를 방문해 정부의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앞줄 왼쪽 첫 번째)이 지난 1월 일자리 관련 부처 장관들과 함께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를 방문해 정부의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정부 정책이 갈수록 단기화되고 있다. 호흡이 긴 정책은 찾아볼 수 없다.”(전직 경제부처 장관)

고용 악화 등에 맞닥뜨린 정부가 근본적인 대안 마련보다는 ‘땜질식 처방’에 의존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재정을 단기간 쏟아붓는 한시 대책은 급한 불을 끄는 데는 효과적이다. 하지만 지원이 중단되는 시점에는 ‘재정절벽’으로 후유증만 키울 공산이 크다. 당장의 위기 모면에만 매달려 ‘뒷감당은 나 몰라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툭하면 '1~3년짜리 대책'… 뒷감당은 누가
정부가 청년 실업자 3600여 명을 기간제 공무원으로 채용해 2년간 노후건물 소방안전 조사를 맡기겠다고 한 것이 단적인 예다. 행정안전부와 소방청은 관련 대책을 이달 말 발표한다. 청년 고용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2년 뒤 이들 인력은 일제히 해고될 수밖에 없어 전형적인 ‘땜질 대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지난 15일 내놓은 청년 일자리 대책도 비슷한 사례다. 2021년까지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청년에게 1인당 연간 1035만원의 실질 소득을 지원한다는 게 핵심이다.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 등 근본적 개선책 없이 기존 제도의 지원 대상과 금액만 한시적으로 늘리는 ‘땜질’에 집중하다 보니 실효성에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3~4년 뒤 정부 지원이 끊기면 청년들의 이탈이 급증해 인력난이 더 극심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세사업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올해 한시적으로 도입한 3조원 규모의 일자리안정자금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이 제도를 언제까지, 어느 규모로 운영할지 아직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땜질식 처방을 되풀이하면 경제정책은 누더기화되고 재정의존도는 심화되는 부작용이 뒤따른다”며 “뼈를 깎는 체질 개선과 구조개혁을 병행해 근본적이고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툭하면 '1~3년짜리 대책'… 뒷감당은 누가
정부는 올해 최저임금 16.4% 인상에 따른 충격을 막기 위해 일자리안정자금을 긴급 도입했다. 30인 미만 사업장에 월 190만원 이하를 받는 근로자 1인당 월 13만원을 지원하는 제도다. 인건비 상승 부담을 줄여 사업자들의 종업원 해고를 막아보자는 ‘정책 땜질’을 한 것이다.

하지만 제도를 도입한 지 석 달이 다 된 25일 현재 일자리안정자금 신청률은 지원 대상자의 58%에 머물렀다. 안정자금을 한시 사업이라 여기는 상당수 사업자가 4대보험 가입 부담 등으로 신청을 기피하고 있어서다. 그러는 동안 30만 명대를 유지하던 월 취업자 증가 폭은 지난달 10만 명대로 급감했다. 일자리안정자금이 예산만 쓰고 효과는 별로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선심 행정은 늘리고

‘핌투(PIMTOO: please in my term of office)’. ‘내 임기 동안에만 좋으면 된다’는 뜻으로 공직자들이 자신의 임기 중 선심성 행정을 남발하는 행태를 지적하는 용어다. 역대 모든 정부에서 핌투 현상은 되풀이됐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그 정도와 빈도가 높으면 높았지 결코 덜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역대 정부의 주요 선심 행정 중 하나인 쌀 수매제가 좋은 예다. 정부는 지난해 약 9360억원을 들여 72만t의 쌀을 사들였다. 특히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한 ‘시장격리용 물량’은 역대 최대인 37만t으로 늘렸다. 쌀값이 구조적 공급 과잉으로 2013년 가마니(80㎏)당 17만원대에서 지난해 12만원대까지 하락하자 “농민 시름을 달래주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명을 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불과 몇 개월 뒤 과연 이 조치가 적절했느냐는 의문이 나왔다. 작년 쌀 생산량이 기상 악화 등으로 1980년 이후 37년 만에 가장 적은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생산량 감소 속에서 시장격리용 물량마저 늘자 쌀값은 지난달 16만원대까지 반등했다. 이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다. 만성적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올해 처음 도입된 쌀 생산조정제(논에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에게 지원금을 주는 제도)는 쌀값 상승에 따른 극심한 신청 저조로 ‘천덕꾸러기 제도’가 됐다. 한 민간 연구소 관계자는 “쌀 시장의 비효율이 갈수록 커지면서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인기 정책은 늦추고

선심 정책과 달리 ‘표 떨어지는 정책’은 정반대 모습이다. 증세나 사회보험료, 전기료 인상 등은 차기 정부로 떠넘기는 듯한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아동수당 신설, 공무원 증원 등 새 국정과제를 도입하며 5년간 178조원이 필요하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재원조달 방안은 촘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면세자 축소 등 보편적 세원 확보 정책은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대기업·고소득자만을 대상으로 한 ‘표적 증세’로 임기 중 25조원을 더 걷기로 했지만 실제 세수 실적은 두고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용 등을 제외한 거의 모든 병원비를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문재인 케어’도 후유증이 클 것이란 우려가 많다. 정부는 현 정부 이후로도 건보 재정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국회예산정책처는 “건보 재정이 올해부터 적자로 돌아서 2026년엔 적립금이 고갈될 것”으로 예상했다.

◆정책 수요자는 혼란 가중

임시방편 정책이 잇따르면서 기업 등 정책 수요자의 혼란도 커지고 있다. 올해 탄소배출권 할당량 결정이 단적인 예다. 작년 말 정부는 2018~2020년 적용되는 ‘2차 계획기간 국가 배출권 할당계획’을 확정하지 못하고 올해만 적용되는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량(5억3846만t)을 의결했다. 탈원전·탈석탄 정책에 밀려 3년 계획을 내놓지 못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탄소배출 할당량을 맞추기 위한 중장기 설비투자계획을 수립하지 못하는 등 혼란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공무원 사회에서도 한시 땜질 정책의 후유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정부 관계자는 “경제 논리에 입각하지 않고 한시적으로 추진되는 정책들이 중장기적으로 경제에 해를 주는 부메랑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상열/임도원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