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방송사가 최근 삼성물산 리조트부문(에버랜드)이 소유한 경기 용인 토지를 둘러싼 여러 의혹을 집중 보도하자 삼성은 “사실이 아니라 추정을 기반으로 한 보도”라며 발끈했다. 삼성물산 등은 연일 해명 자료를 내며 보도 내용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2015년 에버랜드 토지 개별공시지가 산정 결과에 대한 제일모직의 이의신청 자료.
2015년 에버랜드 토지 개별공시지가 산정 결과에 대한 제일모직의 이의신청 자료.
보도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앞둔 2015년 초 제일모직이 소유한 에버랜드의 토지 공시지가가 35% 상승했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보도는 삼성이 의도적으로 공시지가를 크게 올렸다고 봤다.

에버랜드의 자산가치가 오르면서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도 실제 이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고, 이는 삼성물산과의 합병 과정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비율이 결정되는 데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은 이 보도가 얼마나 신뢰성이 있는지 체크해봤다.

이 보도는 삼성이 공시지가를 결정하는 토지 감정평가 결과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감정평가 과정을 살펴보면 특정 기업이 감정 결과를 좌지우지하기는 쉽지 않다.

감정평가는 국토교통부가 추첨을 통해 선정한 두 개 감정평가법인이 감정평가사를 현장에 파견해 수행한다. 이렇게 정해진 감정가는 한국감정원 산하 특수토지위원회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감정평가사, 시민단체,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지방자치단체 산하 부동산평가위원회에도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이후에는 에버랜드 인근 토지를 평가한 감정평가사들을 상대로 ‘균형회의’를 열어 브리핑도 한다. 주변에 비해 특정 토지만 지나치게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 같은 이중 삼중의 감시장치를 모두 무력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당시 균형회의에 참석했던 한 감정평가사는 “에버랜드는 감정평가사들도 관심을 두는 땅이라 당시 브리핑 내용이 지금도 기억난다”며 “감정평가 논리 등에 큰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보도는 또 삼성이 갑자기 오른 공시지가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다고설명했다. 국토부에 이의신청 내역이 없다는 자료까지 내놨다.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감정평가사가 평가한 가치가 낮거나 높다고 여겨질 때 토지 소유주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네 가지다. 일종의 샘플인 표준지와 전체 토지인 개별지의 평가 결과에 대해 각각 국토부와 지자체에 의견 제출이나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당시 제일모직은 1월에 표준지 공시지가 인하를 요구하는 의견을 국토부와 담당 감정평가사에 냈다. 4월에는 개별지 공시지가 인하 요청을 용인시에 했으며, 6월에는 개별지 공시지가에 대한 이의신청도 했다. 제일모직은 가능한 이의신청 종류 네 가지 중 세 가지를 했지만, 이 보도는 나머지 하나인 표준지 이의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아예 이의제기가 없었던 것으로 간주했다.

제일모직의 이의제기는 효과를 거뒀다. 애초 전년 대비 60% 높게 책정됐던 표준지 공시지가 상승률은 22%로 크게 낮아졌다.

공시지가 상승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도움이 됐다는 것도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두 회사의 합병은 상법상 규정에 따라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정한다. 에버랜드 공시지가를 아무리 높이더라도 합병비율에는 영향을 줄 수 없다.

에버랜드 토지 가치 때문에 제일모직 주가가 올라 합병비율이 삼성 오너 일가에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였다면 성립 가능한 논리다. 하지만 토지 공시지가가 최종 결정된 것은 2015년 7월로 양사의 합병 비율이 발표된 지 두 달 뒤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많은 국민이 시청하는 저녁뉴스 시간에 계속 사실이 아닌 내용을 보도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