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가 서울 금천구 가산동 본사에서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가 서울 금천구 가산동 본사에서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신뢰를 잃은 것이 가장 아팠다. 초심으로 돌아가 좋은 제품으로 승부하겠다.”

20일 법정관리를 졸업한 한경희생활과학의 한경희 대표 말이다. 1000만 대 이상 팔린 히트 상품 스팀청소기와 스팀다리미는 한국의 가사 문화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부들이 편하게 서서 일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런 평판 덕분에 한경희생활과학은 법정관리를 받으면서도 브랜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한 대표는 “구조조정을 통해 재기 기반을 닦았다”며 “좋은 제품을 개발, 렌털 판매해 이익구조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했다.

◆AS 강화하고 가격 30~40% 인하

한경희 대표 "신제품 5종으로 렌털시장 진출… 활로 뚫겠다"
한 대표는 “법정관리 개시 이후 가장 신경 쓴 것은 사후관리서비스(AS)였다”고 했다. AS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고객 이탈이 걷잡을 수 없어져 회생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선 제품을 계속 판매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꺼내든 카드는 가격 인하였다. 그는 “제품 가격을 30~40% 낮춰 자금이 돌게 했다”고 말했다. 동시에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100여 명인 직원을 50여 명으로 줄였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에 물걸레 청소기 제품이 노출된 것도 도움이 됐다. 한 대표는 “효리네 민박에 제품이 나와 청소기 제품군 월별 매출이 30%가량 증가했다”고 했다. 이 덕분에 작년 하반기부터 월별 손익이 흑자로 돌아섰다. 그는 “인하한 제품 가격은 서서히 정상화할 것”이라며 “올해 매출 300억원, 영업이익 20억원을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한경희생활과학은 2016년 163억원의 매출과 1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작년 실적은 아직 결산이 끝나지 않았다.

한 대표는 위기에 빠진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나친 홈쇼핑 의존을 꼽았다. 비용이 많이 드는 홈쇼핑 판매 비중이 높아 이익률이 낮았다는 것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렌털시장에 진출하기로 했다. 한 대표는 “오는 5월께 500~600명의 서비스 인력 조직을 꾸려 공기청정살균기, 물걸레청소기, LED(발광다이오드) 마스크 등 5종의 신제품을 렌털 판매할 예정”이라며 “직접 판매 비중을 늘려 이익구조를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전기분해 방식으로 공기 중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를 없애는 공기청정살균기, 순식물성 원료의 살균 소독액을 첨가한 일회용 청소포와 결합해 판매하는 청소기 등을 개발 중”이라고 소개했다. 렌털 판매하는 제품은 국내에서 생산할 예정이다. 한 대표는 “안산 부천 등지의 공장 부지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한경희생활과학의 제품은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한다.

◆국내 1세대 여성 벤처인

한 대표는 국내 상징적인 여성 벤처기업인이다. 2002년 내놓은 스팀청소기는 1000만 대 넘게 팔렸다. 이후 스팀다리미 등으로 잇단 ‘대박’을 터뜨렸다. 2009년 매출은 1000억원에 육박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좋지 않았다. 음식물처리기 청소기 전기프라이팬 등 우후죽순 제품군을 늘렸지만 잘 팔리지 않았다. 자세교정 의자와 책상 등 가구 사업에까지 뛰어들었지만 실패했다.

업계에서는 ‘한경희’란 브랜드 파워가 아직 남아 있어 재기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경쟁 제품이 많아진 데다 국내 렌털시장이 포화 상태여서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