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103년 동안 우리은행이 독점 운영해 온 시금고를 내년부터 복수금고 체제로 바꾼다. 관리하는 자금만 한 해 32조원에 달하는 ‘서울시 금고지기’를 차지하기 위한 우리, 신한, 국민, KEB하나 등 시중은행의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서울시는 그간 시금고를 운영해 온 우리은행과의 약정 기간이 올해 12월31일로 만료됨에 따라 공개경쟁 방식으로 복수 시금고 운영 금융회사를 지정할 계획이라고 18일 발표했다. 다음달 25~30일 금융회사들로부터 제안서를 받아 심의한 뒤 오는 5월 민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되는 심의위원회를 거쳐 금고를 맡을 금융회사를 선정할 계획이다.

차기 시금고 운영사로 선정되는 금융회사는 내년 1월1일부터 2022년 12월31일까지 4년간 시금고를 관리하게 된다. 일반·특별회계예산 관리는 1금고, 기금 관리는 2금고가 맡는다. 올해 기준 일반회계 예산은 22조4664억원, 특별회계 예산은 9조3476억원이다. 이 중 기금은 2조529억원이다. 1금고에는 은행만, 2금고에는 은행뿐 아니라 농협·수협·산림조합·새마을금고·신협 등도 참여할 수 있다.
서울시 "2금고 체제로 전환"… 우리은행 독점 끝나
서울시금고는 1915년 우리은행의 전신인 조선경성은행이 운영을 시작한 이래 우리은행이 103년 동안 관리해왔다. 하지만 올해 기준으로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금고를 한 은행이 독점하는 곳은 서울시가 유일하다. 행정안전부가 2012년 금고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광역자치단체의 금고를 기존 1곳에서 최대 4곳의 은행이 운영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한 데 따른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은행을 제외한 다른 시중은행은 서울시에 복수금고의 필요성을 강력히 요청해 왔다. 시중은행들이 서울시금고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연 32조원에 달하는 자금 관리를 통한 출납 업무로 수수료 등의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공무원과 가족을 대상으로 영업해 부수적으로는 고객 확보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말부터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차기 시금고 선정 태스크포스(TF)’ 및 행안부와의 협의를 거쳐 복수금고 도입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금고 선정 평가항목에서 시와의 협력사업 배점 및 수납시스템 안정성 등 기존 금고에 유리하게 책정돼 있다는 지적을 받은 항목의 배점을 일제히 축소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은행이 시스템 오류로 지난 7일 70만 명의 시민들에게 잘못된 세금 신고서를 보낸 전산사고를 일으킨 것도 서울시가 복수금고 도입을 결심한 또 다른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시 재무과 관계자는 “시금고 운영의 효율성뿐 아니라 복수금고 도입을 요구해 온 금융권의 의견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은행권에 따르면 우리, 신한, 국민, KEB하나은행 등이 서울시금고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서울시금고 은행으로 선정되면 서울시뿐 아니라 시 수납시스템과 연계된 25개 자치구 금고까지 가져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서울시금고를 103년 동안 독점해 온 우리은행은 일반·특별회계를 관리하는 1금고만큼은 빼앗길 수 없다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손태승 우리은행장의 첫 번째 평가무대라는 점도 시금고 유치에 사력을 다하는 까닭이다. 위성호 신한은행장과 허인 국민은행장도 다른 광역자치단체 금고를 운영한 노하우를 토대로 서울시금고 선정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민/박상용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