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가 총 20조원 규모의 원자력발전소 2기를 지을 사업자 후보(예비사업자) 세 곳을 이르면 이달 말 선정한다.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등 5개국이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쇼트리스트(예비사업자 명단)에 포함될지 주목된다. 일각에선 한국이 사우디 원전시장에 들어가기 위해 미국과 손잡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 쇼트리스트 포함될까

산업통상자원부는 쇼트리스트에 한국이 포함될 것으로 낙관하는 분위기다. 원전 건설의 경제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한국을 따라올 나라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 같은 중동국가인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원전을 짓고 있는 데다 지난해 12월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사업을 따낸 점도 플러스 요인이다. 백운규 산업부 장관이 지난 11~13일 사우디를 방문했을 때도 분위기가 괜찮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사우디는 쇼트리스트 발표에 이어 이르면 올해 안에 최종 사업자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선 경제성뿐 아니라 정치·경제·군사적 측면까지 변수가 된다. 한국이 최종 승자가 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20조 사우디 원전 수주전… 한국, 미국과 손잡나
이에 따라 다양한 합종연횡을 모색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16일 “사우디 원전사업을 혼자 다 하긴 힘들 수 있다”며 “컨소시엄을 할 수만 있으면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한국은 UAE를 우군으로 끌어들였다. 지난 1월 UAE 2인자인 칼둔 행정청장이 방한했을 때 ‘두 나라가 사우디 원전시장에 함께 진출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미국과 손을 잡을지도 주목된다. 정부는 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1979년 스리마일 원전 사고 이후 40년 가까이 세계 원전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원전 부흥’을 표방하며 사우디 원전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미국은 사우디의 맹방인 데다 핵연료 재처리 등 사우디가 원하는 ‘당근’을 제시할 수 있어 이번 수주전의 최대 ‘복병’으로 떠올랐다.

한국이 미국과 컨소시엄을 이루면 수주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다만 양측이 통상문제로 맞서는 형국인 데다 북핵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만큼 이번 수주전에서 손을 잡기가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정상외교 치열한데 한국은 주춤?

사우디가 이번에 지으려는 원전은 2기(총 2.8GW 예상)다. 사업비는 20조원가량(약 200억달러)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는 시작일 뿐이다. 사우디는 석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원전을 계속 늘려나갈 계획이다. 현재 0%인 자국 내 원전 비중을 2040년까지 15%(원전 설비 기준 17.6GW)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같은 방안이 현실화되면 총사업비가 100조원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첫 2기를 따내는 나라가 이후 발주될 원전 수주전에서도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이에 따라 각국은 정상까지 나서 치열한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사우디 실권을 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난다. 2일에는 릭 페리 미 에너지부 장관이 영국 런던에서 사우디 당국자들과 원전 관련 회담을 했다.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해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을 모스크바로 초청해 민간분야 핵 협력을 논의했다. 사우디 국왕이 러시아를 공식 방문한 건 처음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달 하순 베트남·UAE 순방 때 사우디 방문을 추진했다. 하지만 사우디 정상과 일정을 맞추지 못해 이번 순방에서 사우디는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막판까지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을 기대했던 원전 관련 업체들은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