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국내 금융지주의 지배구조가 취약하며 특히 사외이사들이 ‘거수기’로 전락했다고 발표하자 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이 발끈하고 있다. 일부 사외이사는 ‘사외이사 역할에 대한 인식과 책무에 대한 충실도가 다소 낮은 수준’이라는 금융당국의 지적에 대해 직설적으로 불쾌감을 나타냈다.

A금융지주 사외이사는 1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금융위원회가 어떤 근거로 사외이사가 최고경영자(CEO)의 거수기라는 지적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이사회 회의를 단 한 번이라도 지켜봤다면 이 같은 ‘탁상머리 지적’은 하지 못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금융지주 사외이사는 한국에서 가장 역할을 많이 하는 사외이사”라며 “금융당국이나 정치권이 낙하산 인사로 금융사 지배구조를 훼손하는 것을 막는 대책이 더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금융지주 회장의 ‘셀프 연임’ 방지를 위해 사외이사 인선과 평가에 사내 경영진을 배제하는 대책은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B금융지주 사외이사는 “몇 해 전 사외이사들의 자기 권력화 문제가 지적되면서 사외이사 인선과 평가에 사내 경영진을 포함했는데 이번엔 과거로 돌아가는 셈”이라며 “CEO 권한을 제한한다면 사외이사들이 자기가 자신을 뽑는 모순적인 구조가 된다”고 말했다.

대안으로 제시한 외부기관 활용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대부분이다. C금융지주 사외이사는 “사외이사들을 평가할 수 있는 업무 관계자와 근거 자료가 모두 사내에 있어 불가피하게 사내 경영진과 임직원이 평가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며 “외부 컨설팅 회사가 내부 회의마다 따라다니면서 평가한다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어 “외환위기 이후 20년 가까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계속 보완, 운영해온 제도를 새삼스레 문제로 지적하고 강하게 비판하는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금융지주 관계자들은 “대형 금융사 사외이사를 하면 겸직도 금지되고 금융당국의 간섭이 많아 명망 있는 인사를 영입하기 어렵다”며 “이 와중에 금융당국이 사외이사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더하면서 사외이사 위촉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꼬집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