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 과제 (2) 거시·금융정책

생산성과 무관한 임금 지급
이탈리아 도시국가 조선·해운업 붕괴

최저임금 급격한 인상은 기업들 비용 구조 악화시켜
경제활동 전반 위축시킬 것

경제 성장의 주체인 기업들
보다 건강하게 경쟁하도록 자유로운 가격시스템 만들어줘야
민간 싱크탱크 FROM 100과 한국경제신문사는 지난 8일 서울 광화문 한국생산성본부에서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의 바람직한 거시·금융정책’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FROM 100 대표), 홍기석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민간 싱크탱크 FROM 100과 한국경제신문사는 지난 8일 서울 광화문 한국생산성본부에서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의 바람직한 거시·금융정책’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FROM 100 대표), 홍기석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맞아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선 생산성을 반영한 임금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는 전문가 진단이 나왔다. 생산성 향상과 관계없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기업의 비용구조를 악화시켜 경제 전반을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도 제기됐다. 지금 추세라면 생산성과 괴리된 임금을 지급했던 나라들이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난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생산성 간과한 이탈리아의 몰락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민간 싱크탱크 FROM 100과 한국경제신문사가 지난 8일 연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의 바람직한 거시·금융정책’ 토론회에서 “각국은 어떻게 하면 기업들에 보다 유리한 비용조건을 제공해 차별화된 제품을 시장에 내놓게 할 수 있을지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며 “임금인상을 통해 수요를 창출하겠다는 한국의 소득주도성장은 이런 글로벌 경쟁에 노출된 현실을 감안하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경-FROM 100] "노동생산성 안 따지고 임금 올린 국가 모두 몰락했다"

올해 최저임금이 작년보다 16.4% 인상된 데 대해 성 교수는 “경제의 가격시스템이 감당해내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번과 같은 두 자릿수 인상이 (결정시점 기준으로) 2000년과 2006년에도 있었다고 하나 당시엔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합한 경상성장률이 각각 11.2%와 7.4%에 이르렀던 때”라며 “지난해 경상성장률이 5% 수준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최저임금 인상률과의 갭이 너무 커 경제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성 교수는 이어 저명한 경제사학자 찰스 킨들버거를 인용하면서 “과거 16~17세기 베네치아와 제노바 등 해상교역으로 번성했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생산성과 괴리된 임금을 지급해오다 영국 등 후발주자에 밀린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킨들버거는 저서 《경제 강대국 흥망사: 1500~1900》에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몰락한 원인 중 하나로 해운업과 조선업에서 생산성과 무관한 보수체계를 유지해온 사실을 거론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항해 여부와 상관없이 매일 선원들에게 일정한 급료를 지급했다. 그러다 보니 선원들은 가급적 항구에 머물다 바람이 적을 때만 항구를 나섰다. 반면 항해가 끝난 뒤에야 보수를 지급한 영국의 선원들은 순풍이 한 번이라도 불면 바로 항구로 나설 준비를 했다.

이렇듯 후발국과의 국제경쟁에 노출된 이들 산업에 생산성 대비 높은 임금을 지급하다 보니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몰락은 필연적이었다는 얘기다. 성 교수는 “지금 정부가 하는 혁신 없는 총수요 관리 정책만으론 생산성 향상을 결코 기대할 수 없다”며 “혁신성장의 주체인 기업이 더 자유롭고 건강한 경쟁을 벌이도록 유도하기 위해선 생산성을 반영한 임금체계 등 자유로운 가격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부연했다.

◆“재정 투입해 ‘성장 안전판’ 구축해야”

토론회에서는 정부 재정정책의 역할을 둘러싼 논의도 이어졌다.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은 “장기추세를 감안한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미국·유럽보다도 낮은 1.2% 수준에서 안정화될 것으로 예측된다”며 “유럽은 일찌감치 사회안전망을 확충해 국내 소비를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뜨리지 않는 ‘성장의 안전판’을 마련했지만 한국은 압축성장을 해온 나머지 그렇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성장의 안전판이 될 고용·복지체계 등 사회안전망을 조속히 확충해야 한다는 것이 윤 위원의 견해다. 그는 “서구 선진국과 달리 우리는 내수 소비를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지 않아 사회 구성원 간 갈등은 크고 생산성은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저출산과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재정이 보다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와 관련해 윤 위원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달 발표한 연례협의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는 재정수지 흑자 비율을 1.5%에서 0.5% 이하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권고한 사실도 언급했다.

윤 위원은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는 여성인력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를 제시했다. 그는 “저출산으로 노동력 투입이 급속도로 줄어드는 상황에선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을 끌어올리는 것이 돌파구가 될 것”이라며 “보육시설 등 인프라를 대폭 확충해 여성들이 육아 문제로 직장을 그만두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화정책 목표 명확히 해야”

전문가들은 근시안적인 통화·금융정책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가상화폐 규제 이슈가 불거졌을 때 주무부처가 어디냐를 놓고 금융위원회와 법무부 등 관계부처 간 혼선이 빚어진 사실을 거론하며 “3만달러 시대를 맞아 금융정책에 대한 개념의 재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윤 위원은 “한국의 물가상승률이 수년째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한국은행은 여전히 ‘물가상승률을 타기팅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한 채 사실상 방치했다”며 “한은은 통화정책의 목표를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3만달러 시대’에서는 금융시장의 안정성이 더 중요해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홍기석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앞으로 저성장과 고령화에 따라 생산인구는 줄어드는 반면 자산을 축적한 노인이 많아지면서 자본의 비중이 경제규모에 비해 점점 커질 것”이라며 “금융시장의 안정성이 당국의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 교수는 “과거 한국과 미국 등의 사례를 보면 금융위기의 비용은 항구적이고 성장경로에도 영향을 주는 만큼 통화당국이 금융안정을 고려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제언했다.

■ FROM 100은

FROM 100은 한국 대표 지식인 100여 명이 참여하는 민간 싱크탱크다. 미래(future), 위험(risk), 기회(opportunity), 행동(movement)의 머리글자에 숫자 100을 붙인 이름이다. 연구력이 왕성한 중견 학자와 신(新)산업 분야 젊은 지식인이 주축이다.

한국경제신문사는 지난해 FROM 100과 총 10차례에 걸쳐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제를 주제로 연속 토론회를 열었다. 올해는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앞두고 한국 경제가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와 정책 방향을 주제로 연중 토론회를 연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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