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제네바 모터쇼, 레이싱모델 실종사건
모터쇼하면 자동차만큼 먼저 떠오르는 모습이 있다. 차 옆에 선 레이싱모델이다. 영화배우 뺨치는 외모를 지닌 모델들이 되레 차보다 더 큰 인기를 끄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번 제네바 모터쇼에선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 모델 대신 자동차 경주복이나 평범한 차림을 한 모델을 세운 전시관이 늘었다. 아예 모델을 배치하지 않고 차량 이해도가 높은 전문가를 세워 관람객의 질문 응대에만 집중하는 곳도 많아졌다.

쌍용자동차는 제네바 모터쇼에서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렉스턴 스포츠를 홍보하기 위해 캐주얼 옷차림의 남성과 여성 모델을 내세웠다. 쌍용차 관계자는 “야외활동에 적합한 렉스턴 스포츠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레이싱모델 대신 평범한 모델을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외국 자동차 회사들도 화려한 모델을 앞세워 단순히 시선을 끄는 것보다 실용성을 강조하고 있는 분위기다. 도요타의 고급차 브랜드 렉서스는 홍보 부스에 자동차만 남겨놓고 모델을 아예 없앴다. 피아트크라이슬러(FCA)도 모터쇼 개막을 앞두고 막판에 여성 모델과의 계약을 취소했다는 후문이다. 사라 젠킨스 닛산 대변인은 “자동차를 판매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모델보다 차를 돋보이게 해야 한다”며 “차 전문가를 고용해 전시관에 배치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를 구매하는 고객층의 변화도 모터쇼에서 레이싱모델이 사라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2016년 기준 영국에서 자동차를 소유한 여성은 10년 전과 비교해 66% 증가했다. 차를 가진 남성의 증가 비율보다 세 배 이상 높은 수치다. 독일의 신차 구매 고객 중 3분의 1은 여성이다. 프랑스도 여성 고객이 37%에 달한다.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