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털어주는 기자 - 서울 '폴 앤 폴리나'
장발장이 훔쳤던 빵 '캉파뉴'… 그 맛은 어떨까

빵 한 조각 훔쳤다가 감옥에서 19년을 보내야 했던 그 남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둑, 장발장입니다. 그가 훔친 빵이 뭔지 아시나요? 프랑스의 시골빵, 캉파뉴(campagne·사진)입니다. ‘시골’이란 뜻의 이름처럼 캉파뉴는 가난한 서민의 배를 채워주는 빵이자 농부의 빵이었습니다. 호밀과 통밀, 물, 소금과 천연 효모균으로만 만들어진 둥글고 큰 덩어리 빵. 캉파뉴 하나면 서너 명이 배를 채울 수 있을 정도로 크기도 큽니다.

무식할 정도로 크게 만든 이유가 있답니다. 캉파뉴는 반죽해서 굽기까지 긴 시간이 걸립니다. 반죽을 1차 발효한 뒤 70시간 정도 저온 숙성하고, 2차 발효를 해서 빵을 구워야 합니다. 발효 시간을 줄여도 최소 4시간, 보통은 3일까지 걸린다고 합니다. 그 옛날 집집마다 오븐이 있었을 리 없고, 마을 공동 화덕에서 빵을 구워야 했기 때문에 한 번 만들 때 큼직하게 만들어 잘라 먹었다고 합니다.

제대로 된 캉파뉴를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곳. 빵 맛 좀 안다는 사람들은 첫 번째로 ‘폴 앤 폴리나’를 꼽습니다. 처음 이 집을 알게 된 건 2009년이었습니다. 홍대 앞 골목 아주 작은 가게 앞에 사람들이 긴 줄을 서서 누런 봉투 하나씩 들고 나오는 걸 보고 우연히 들어가 봤습니다. 그때만 해도 천연 발효종이라든가 캉파뉴라든가, 식사빵이라는 말이 흔치 않았을 때죠. 가게 안 풍경은 더 신기했습니다. 흰 옷을 입고 흰 모자를 쓴 여러 명의 제빵사가 그 작은 공간에서 말 없이 웃으며 빵 반죽을 다루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구수한 빵 냄새를 맡으며 느리게 빵 굽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힐링’이 됐다면 믿어지시나요.

장발장이 훔쳤던 빵 '캉파뉴'… 그 맛은 어떨까

폴 앤 폴리나의 빵 종류는 20가지가 안 됩니다. 식빵, 캉파뉴, 치아바타, 바게트 2종, 프레첼, 크루아상, 올리브 치아바타, 스콘 등. 크로와상 등 두어 가지를 제외하면 설탕도, 버터도, 달걀도 쓰지 않습니다. 맛을 보면 더 놀랍니다. 그 단순한 재료로 어떻게 이렇게 겉은 구수하고 바삭한, 속은 쫄깃하고 부드러운 맛을 낼 수 있는 건지.

폴 앤 폴리나의 그 첫 가게는 연희동의 조용한 주택가로 옮겨갔습니다. 서울 여의도점, 광화문점 세 군데를 직영하고 있는데 어느 지점을 가든 맛 차이가 없습니다. 앉을 자리도 없이 줄을 섰다 빵만 가져와야 하는데도 10년째 단골 손님이 끊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시간이 만들어내는 그 깊은 맛을 잊지 못해서일 겁니다.

캉파뉴를 더 맛있게 먹는 법을 알려드리죠. 우아하게 먹는다고 칼로 자르지 마세요. 손으로 뭉텅 뜯어내 결을 살려 먹는 게 가장 맛있습니다. 그렇게 한 입 먹고 나면 장발장의 도둑질이 꼭 배고픔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라는 의심(?)마저 들게 됩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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