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책 논의하는 최저임금 TF >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오른쪽 두 번째)과 이성기 고용노동부 차관(세 번째)이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 태스크포스(TF) 겸 근로시간 단축 관련 회의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 합의 무산 등에 따른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 대책 논의하는 최저임금 TF >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오른쪽 두 번째)과 이성기 고용노동부 차관(세 번째)이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 태스크포스(TF) 겸 근로시간 단축 관련 회의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 합의 무산 등에 따른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최저임금위원회가 7일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대해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당장 내년도 최저임금 협상에 ‘빨간불’이 켜졌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올해 6월에 결정되는 내년 최저임금이 두 자릿수 인상되면 또 한 번의 ‘최저임금 쇼크’가 닥칠 것이란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그동안 정부와 여당 내에선 대선 공약인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인상으로 인상’을 지키기 위해선 산입범위 조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고, 산업계와 야당도 “산입범위를 확대해야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덜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컸다.

최저임금위 합의 실패로 정부와 국회가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을 담은 최저임금법 개정을 시도할 예정이지만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노동계 반발이 걸림돌이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도 '정치적 흥정'… 합의 늦어지면 내년 더 큰 쇼크
◆“30년간 이어진 산입범위 논쟁”

최저임금제도 개선은 제도를 처음 시행한 1988년 이후 30년간 시도했지만 한 차례도 이뤄진 적이 없다. 경제·사회적 여건이 바뀐 만큼 산업 현장에 맞게 산입범위 등을 조정해 야 한다는 주장은 많았지만 노사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특히 산입범위 확대는 노동계 반대가 컸다.

이번에도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을 놓고 노사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았다. 현행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최저임금은 기본급과 직무수당만 포함된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가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반감시킨다”는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경영계는 “1년 내 지급된 모든 정기상여금 외에 식대·교통비 등 각종 고정수당도 모두 최저임금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초 최저임금위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 권고안에는 ‘매달 지급되는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포함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TF 권고안을 중심으로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며 “국회에 최저임금제도 개선 관련 입법이 발의돼 있어 입법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노동계가 산입범위 개편 추진에 강력히 반발하는 만큼 결국 정부와 국회가 노동계에 끌려갈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 6일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 저지 대회’를 여는 등 정부를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후 보완책은 나중에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합의 무산은 예고된 것이었다. 최저임금은 대폭 인상해놓고 제도 개선 관련 보완책은 미리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노동정책을 급하게 서두르다 갈등 사항을 뒤로 넘긴 전례는 많다. 정권에서 생색은 내고 보완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아 차기 또는 차차기 정부에 부담을 얹어주는 구도다.

최근 여야가 합의한 근로시간 단축 방안도 논란의 불씨를 차기 정부에 넘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당장 7월부터 300인 이상 기업은 근로시간을 현재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여야 하는데 이에 대한 보완책인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2022년 이후에나 도입된다. 게다가 법안 통과 과정에서 ‘2022년 말까지 개선방안을 준비한다’는 식으로 봉합해 차기 정부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둘러싸고 또 한 번 진통이 예상된다.

2013년 고령자고용촉진법을 개정할 때는 60세 정년연장을 의무화하면서 임금피크제 등 보완대책을 챙기지 못했다. 합의에 서두르느라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것을 임의조항으로 남겨두는 바람에 현장의 혼란이 컸다. 정부가 2015년 뒤늦게 임금피크제를 확산한다며 공공기관 의무 도입을 추진하자 노동계는 극심하게 반발했다.

한 노동 전문 교수는 “노동계를 적으로 돌린다는 정치적 부담을 떠안기 싫어서 이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며 “미래지향적 노동정책을 펴지 않고 개혁한 척 시늉만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심은지/고경봉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