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덤핑 조사기법 양자협의 참여하겠다"…제3자 제소 가능성
2002년 美 철강 세이프가드는 8개국 공동 제소 후 철회


정부가 최근 미국의 반덤핑 조사 기법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자 주요 철강 수출국들이 관심을 보이며 한미 양국의 협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미국의 보호무역으로 피해를 본 다른 국가들이 한국과 같은 입장에서 분쟁에 동참할 경우 정부의 제소가 힘을 받을 전망이다.

6일 WTO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지난 2일 한국 정부가 '불리한 가용정보(AFA)'와 관련해 미국 정부에 요청한 양자협의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양국 정부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EU는 한국이 문제 삼은 미국의 AFA가 이탈리아, 네덜란드, 영국 등이 미국에 수출하는 철강 제품에도 적용되고 있어 양자협의에 실질적인 이해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AFA(Adverse Facts Available)는 조사 대상 기업이 미 상무부가 요청한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거나 조사에 충분히 협조하지 않았다고 판단될 경우 기업이 제출한 자료가 아닌 제소자의 주장 등 불리한 정보를 사용해 고율의 관세를 산정하는 기법이다.

앞서 한국 정부는 지난달 14일 "우리 기업이 수출하는 철강과 변압기에 대해 미국이 AFA를 적용해 고율의 반덤핑·상계 관세를 부과한 조치가 WTO 협정에 위배된다"며 미국에 양자협의를 요청, WTO 분쟁해결절차를 개시했다.

러시아도 지난 2일 "미국이 러시아산 탄소합금강선재에 대한 덤핑 마진(관세율)을 산정하면서 AFA를 적용해 러시아 생산업체 2곳에 757%에 육박하는 관세를 부과했다"며 양자협의 참여를 요청했다.

러시아는 높은 관세율 때문에 러시아산 탄소합금강선재의 미국 시장 진출이 사실상 금지되면서 러시아의 교역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자흐스탄도 미 상무부가 반덤핑·상계 관세 조사에서 AFA를 적용했다며 지난 1일 양자협의 참여 의사를 양국 정부에 전달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두 회원국 간 분쟁에 실질적 이해관계가 있는 제3의 회원국은 분쟁 당사국의 양자협의에 참여를 요청할 수 있다.

양자협의 참여는 해당 분쟁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후 분쟁해결패널이 설치될 경우 이들 국가도 제3자 자격으로 제소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EU와 러시아 등이 제3자 자격으로 미국의 AFA를 비판하는 의견을 제시할 경우 우리나라가 분쟁에서 승소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다른 나라들도 미국의 조치가 부당하다고 지적하면 분쟁해결패널이 아무래도 우리 입장을 호의적으로 보게 된다"며 "중국, 일본, 브라질, 인도 등 주요 수출국이 많이 붙으면 우리 입장이 강화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2년 미국이 발동한 철강 세이프가드의 경우 유럽공동체(EC)가 미국에 양자협의를 요청했고 이후 일본과 한국도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이 건은 결국 EC, 일본, 한국, 중국 등 8개 국가가 미국을 제소했고, 분쟁해결패널은 8건을 묶어서 심의한 결과 미국이 WTO 협정을 위배했다고 판정했다.

미국은 2003년 세이프가드를 철회했다.

한편, 베트남은 지난 2일 WTO 세이프가드 협정에 근거해 세탁기 세이프가드에 대한 양자협의를 미국에 요청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미국으로 수출하는 세탁기의 상당 부분을 베트남에서 생산하고 있어 우리 정부는 세이프가드 대응 과정에서 베트남과 공조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한국이 WTO에 美 제소하자 EU·러시아도 동참 조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