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 주목하는 GM, 일자리 고민하는 정부

협상론의 대가로 꼽히는 펜실베니아 와튼스쿨의 리처드 쉘(Richard Shell) 교수는 협상에도 원칙이 있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원칙의 전제로 현재와 미래 이익을 구분하라고 말한다. 둘 사이의 가치 우위를 따지는 게 협상이라는 뜻이다.

원칙에 따르면 현재와 미래 모두 얻을 게 없으면 협상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현재보다 미래 이익 가치가 높으면 협상 자체는 수용되며, 현재와 미래 이익이 서로 대등한 수준일 때는 양측이 타협한다. 그리고 현재와 미래 이익 모두 높을 때는 합의가 이뤄지기 마련이다.
[하이빔]미국GM이 한국에서 절대 필요한 것

최근 한국지엠 사태를 두고 한국과 미국GM 간의 협상에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리차드 쉘 교수의 이론을 적용하면 미국GM은 협상의 전제로 현재보다 미래 가치에 비중을 둔 '수용'인 반면 산업은행으로 대표되는 한국은 현재와 미래 이익이 대등한 '타협'으로 접근하고 있어서다. 결과적으로 양측 모두 미래의 이익이 걸려 있는 만큼 협상은 수용했지만 타협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기본적으로 양측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가진 쪽은 미국GM이다. 가치의 초점을 현재보다 미래에 두고 있어서다. 그러니 일자리가 걸린 현재 생산 규모 축소 등에선 아쉬울 게 없다. 군산 공장 폐쇄를 번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협상의 우위에 올라서려면 미국GM에게 현실 이익 또한 중요하다는 점을 강하게 어필해야 한다. 한 마디로 한국GM의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미국GM이 요구하는 것은 국내 생산 시설 축소와 기업 유지에 필요한 자금 지원이다. 반면 한국 정부는 자금 지원의 전제로 국내 생산 시설 유지를 요구한다. 둘의 생각은 현재와 미래 가치 비중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기업의 본질대로 미국GM은 한국GM이 앞으로 이익을 낼 수 있느냐를 보는 반면 한국 정부는 미국GM이 한국GM의 일자리를 유지할 것인가에 주목한다.

그런데 미국GM도 약점이 있다. 한국GM의 가치가 여전히 적지 않아서다. 특히 미국GM이 보유한 해외 공장 가운데 독자적인 제품개발 능력을 가진 곳은 한국GM이 유일하다. 한국GM 공장을 모두 팔아도 연구개발과 디자인센터는 가져가겠다는 미국GM의 입장이 나온 배경이다. 따라서 협상에 임하는 한국으로선 이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연구개발 능력을 담보로 일자리를 유지하는 게 협상의 전략이라는 뜻이다.

이런 얘기는 한국GM 내부에서도 흘러나온다. 실제 회사 관계자가 최근 들려준 이야기는 흥미롭다. "생산에 있어 한국GM의 능력은 미국GM에게 그다지 고려 사항이 아니다. 하지만 제품개발 능력은 한국GM이 미국GM을 앞선다. 그래서 '수익'이 우선인 미국GM은 결코 한국GM의 연구개발능력을 포기하지 못한다"라고 말이다.

이어 그는 나름의 대안도 내놨다. 한국 정부가 일자리 유지를 위한 비용을 지원하되 제품개발에 대한 공동 소유권을 확보하는 방안이다. 이 경우 한국GM이 직접 개발한 제품은 한국GM 국내 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미국GM도 해당 제품을 어디서든 생산할 수 있고 이때부터는 글로벌 각 공장의 생산성 경쟁을 통해 한국GM이 경쟁력을 갖는 방안이다.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 양보가 불가피하지만 협상의 타협점을 가지려면 미국GM이 눈독을 들이는 연구개발을 두고 서로의 카드를 하나씩 버리는 게 최선이라는 의견이다. 물론 이해 당사자 간 논쟁의 여지가 많겠지만 협상이라는 전제 하에 설득력은 충분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최근 배리 앵글 사장이 한국에 다시 들어왔다는 점은 미국GM 최고 경영진의 메시지를 받았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가 내놓을 카드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국GM의 현재보다 미래 가치에 우선할 것이란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정부 입장에 따라 창원공장 폐쇄라는 추가 압박도 던질 수 있다. 그래서 연구개발부문을 의제로 올리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미국GM이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을 놓고 국내 일자리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다. 협상의 기본은 손해를 최소화하고, 서로의 이익을 하나씩 챙기는 것이니 말이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