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EU, 美 철강관세 보복 예고…정부는 조용한 '아웃리치'
통상압박 공조 파트너에 中 빠져…"잘못하면 불 난데 기름"


미국의 철강 관세에 유럽연합(EU)과 중국 등이 보복관세를 예고하면서 '무역전쟁'이 시작될 조짐을 보이자 4일 통상 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의 보호무역 강공에 맞서려면 비슷한 처지의 국가들과 힘을 모아 반미(反美) 전선을 형성하는 게 유효한 전략일 수 있지만, 강대국의 싸움에 말려들 경우 더 큰 상처를 입을 가능성을 제외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작은 나라의 딜레마"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수입 철강에 대한 25% 일괄 관세 언급 이후 "미국 정부의 최종 결정전까지 대미(對美) 아웃리치 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는 짧은 입장을 내놓았다.

독일과 프랑스 등 EU 회원국과 중국,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등 철강 수출국들이 성명 등을 통해 강하게 반발한 것과 대조된다.

이는 정면 대응으로 미국을 자극하는 것보다 조용한 설득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산업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 입장에서 가장 치명적인 12개국 선별 관세 대신 일괄 관세로 기운 배경에 최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방미 등 정부 설득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가장 큰 수출 시장인 미국, 중국, EU 중 누구도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되는 점도 정부가 '로우키' 기조를 유지하는 이유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런 상황을 "작은 나라의 딜레마"라고 표현했다.

안 교수는 "중국, EU와 같이 경제규모가 크면 무역보복도 하고 전면전에 나서서 압력을 행사하는 게 가능한데 우리처럼 통상에 목매는 나라로서는 잘못하면 불 난데 기름 붓는 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WTO 제소 외에 답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미국의 통상압박에 "당당한 대응"을 주문했지만, 정부 방침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미국의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에 대한 보복관세를 추진할 방침이지만, 그 전제는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에서 우리가 승소했는데도 미국이 판정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다.

어디까지나 WTO라는 국제규범 내에서 미국을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할리 데이비드슨 오토바이나 리바이스 청바지 등 구체적인 품목에 대한 보복관세를 거론한 EU나 이미 대두(콩) 등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보복관세를 검토하는 중국의 대응과는 강도의 차이가 있다.

김 본부장은 지난달 12일 국회에서 중국의 미국산 수수 반덤핑 조사처럼 WTO 제소 외의 공격적인 수단을 고민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밝혔다.

◇ 중국과 거리 두기
정부는 미국과 중국의 싸움에 휘말리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미국이 우리가 아니라 중국을 겨냥했는데 우리나라와 중국의 산업구조가 비슷하다 보니 유탄을 맞고 있다는 게 정부의 인식이다.

중국과 함께 미국의 통상압박에 맞설 경우 오히려 더 큰 보복을 불러올 수 있다는 현실적인 우려가 있다.

산업부는 미국의 통상압박에 대한 대응으로 EU 등 이해 관계국과 공조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왔지만, 공조 대상에 중국을 거론한 적이 없다.

중국이 '무역확장법 232조' 철강 관세나 태양광 세이프가드의 가장 큰 이해 관계국 중 하나라는 점을 고려하면 공조할 여지가 충분해 보이지만 아직 중국에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반면 산업부는 지난 1월 19일 '제7차 한·EU 무역위원회'에서 태양광 세이프가드에 대한 공조 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또 지난 1월 24~26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WTO 비공식 통상장관회의 및 제48차 세계경제포럼에서 김 본부장이 캐나다, 멕시코, EU 등과 최근 미국의 수입규제에 대한 공조 방안을 모색했다.

◇ "반미 전선에 합류해야"
그렇지만 미국이 일괄 관세로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린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다자 차원에서 다른 국가들이 보복한다면 우리도 참여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보복을 다자가 가하기 때문에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다만 보복의 강도나 구체적 품목 선정은 적절한 수준에서 해야 한다"며 "참여는 하되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현명한 보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아직 '사드 보복'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기업들은 다시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 희생양이 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EU 등이 무역장벽을 세우기 시작하면 세계 각지에 생산기지를 구축한 기업들의 수출길이 막힐 수밖에 없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도 중요하고 중국도 중요하다"면서 "무역전쟁이 시작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납작 엎드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