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스포츠 본고장에 던진 고성능 도전장
-미래 기술 협업 시스템으로 자존심 이어갈 것

"하루 평균 15~20대를 여기서 생산해 세계 곳곳으로 운반합니다. 주문이 들어와 제품을 완성하기까지 3주 정도가 걸리며, 수작업 진행이 기본이어서 모든 옵션을 소화할 수 있죠"

지난 27일 영국 런던에서 90분 정도 떨어진 맥라렌테크놀로지센터를 찾았을 때 이 회사 스테판 도넬 홍보대사는 고성능 슈퍼카의 생산 시스템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르포]맥라렌은 왜 영국에서 미래를 준비하나

탄소섬유 복합체 섀시에 직접 제작한 파워트레인을 결합시키고 이후 각종 의장부품을 연결하는 공정은 여느 자동차회사와 같지만 과정이 한 단계 넘어갈 때마다 여러 사람이 차트를 들고 꼼꼼하게 확인하는 모습은 낯선 풍경이다.

도넬 홍보대사는 "고성능의 하이퍼 제품일수록 무결점을 추구해야 한다"며 "단계별 검사에서 문제를 발견하면 처음부터 다시 조립하는 과정으로 되돌아간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이어 최종 단계에선 6명의 최고 엔지니어들이 합격판정을 내려야 비로소 출고할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뉴질랜드 출신의 브루스 맥라렌이 영국에 둥지를 튼 건 모터스포츠 때문이다. 15세 때 아버지로부터 선물받은 오스틴 세븐을 타고 레이서로 입문한 후 뉴질랜드 그랑프리를 거쳐 유럽에 발을 디뎠다. 이후 미국과 유럽의 다양한 레이스에 출전했고, 그 중에는 자동차경주의 최고 클래스인 F1도 있었다.

1965년 자신의 이름을 건 맥라렌 레이싱팀 창단 이후 맥라렌은 스스로 경주용 머신을 제작, 2년 후인 1967년부터 F1 챔피언에 올랐다. 이후 캐나다아메리칸 경주로 유명한 '캔암(CanAM)' 시리즈에선 1969년 무려 11회 연속 우승, 레이서뿐 아니라 경주용 머신 제작자 입지 또한 다지게 된다. 비록 1970년 자동차시험 도중 사고로 목숨을 잃었지만 1963년부터 시작한 그의 F1 열정은 훗날 고성능차 제작사로서 맥라렌이 건재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르포]맥라렌은 왜 영국에서 미래를 준비하나

이후 맥라렌은 레이싱팀 운영뿐 아니라 실제 판매용 고성능차 제작에 뛰어들었다. 그 첫 차가 테크놀로지센터 입구에 전시한 1993년 맥라렌 F1이다. 운전석을 가운데, 양 옆에 동승석을 둔 3인승 구조다. 등장 때는 BMW V12 엔진을 얹었고, 1998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속 386㎞를 기록해 주목을 끌었다. 브루스 맥라렌 이후 중흥기를 끌었던 고든 머레이의 설계로 경량화를 위한 탄소섬유 차체를 곳곳에 활용했다.

도넬 홍보대사는 "맥라렌은 빠른 가속을 위한 경량화 소재로 탄소 복합체를 많이 쓴다"며 "1981년 F1 경주차로 만든 MP4-1의 모노코크 차체에 처음으로 탄소 복합체를 실험적으로 사용했다"고 말한다.
-고성능 하이퍼카 세나 이후 하이브리드 진출
-독자 기술 주도하되 협업은 활짝 열어놔

탄소 소재에 대한 맥라렌의 집착(?)은 경량화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했다.

맥라렌 테크놀로지센터 연구개발부문을 이끄는 댄 패리 윌리엄스 이사는 "지난해말 공개한 맥라렌 세나 또한 탄소섬유 복합소재를 차체로 활용했다"며 "경량화는 맥라렌에 있어 핵심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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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라렌이 차의 무게를 줄이려는 이유는 분명하다. 가벼울수록 움직일 때 필요한 힘이 최소화되고, 그에 따라 가속성 향상은 물론 배출가스를 동시에 줄이기 때문이다. 최근 영국이 정부 차원에서 국립탄소복합체연구소를 적극 운영하는 것도 결국은 저탄소로 향하는 과정이다.

윌리엄스 이사는 "맥라렌이 다른 슈퍼카와 차별화되는 점은 운전자의 감성 자극"이라며 "이를 위해 가벼운 소재의 적용은 끊임없이 추구할 과제"라고 밝혔다.

이를 보여주듯 도넬 홍보대사는 테크놀로지센터 한 켠에 전시한 탄소 차체를 가리키며 앉아보라고 했다. 앉자마자 손으로 번쩍 차체를 올려 보이며 가볍다는 점을 강조했다.
[르포]맥라렌은 왜 영국에서 미래를 준비하나
[르포]맥라렌은 왜 영국에서 미래를 준비하나

고성능차 양산은 2004년 지금의 테크놀로지센터 완공 후 본격 시작했다. 이와 함께 맥라렌이 추진했던 프로젝트는 벤츠와 손잡고 내놓은 SLR 맥라렌이다. V8 5.4ℓ 엔진에 벤츠의 5단 변속기를 적용, 626마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고성능차부문에서 양사의 합작은 그리 주목받지 못했고, 맥라렌은 경주용 머신 외에 본격적인 고성능차의 독자 노선을 걸었다.

맥라렌 제품은 570으로 알려진 스포츠 시리즈, 720S로 유명한 슈퍼 시리즈 그리고 P1으로 대표되는 얼티메이트 시리즈로 각각 발전해 왔다. 그 중 2011년 등장한 MP4-12C는 1993년 내놓은 최초 양산차 F1의 현대적 재해석으로 평가받는다. V8 3.8ℓ 트윈터보 엔진에 7단 자동변속기를 조합, 625마력으로 최고시속 330㎞를 넘나든다. 이후 2014년 최고 915마력에 무게가 1,395㎏에 불과한 하이브리드 슈퍼카 P1을 선보였고, 2015년에는 MP4-12C를 보완한 650S, 2016년에는 소비자 확대 차원에서 베이비 맥라렌으로 불린 570S을 소개했다. 같은 해 650S의 성능을 보강한 675LT를 통해 페라리 및 람보르기니 등과 경쟁을 이어갔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670LT 스파이더(2017년), 720S(2017년) 등을 출시했다.
[르포]맥라렌은 왜 영국에서 미래를 준비하나
[르포]맥라렌은 왜 영국에서 미래를 준비하나

맥라렌은 슈퍼카 '세나' 제작을 준비중이다. 지난해 공개한 세나는 맥라렌팀에서 활동한 전설적인 레이서 '아일톤 세나'를 기념해 만든 500대 한정판이다. 이미 499대의 예약이 끝났을 만큼 기대가 높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재미나는 건 세나에 다양한 나라의 부품을 사용한 점이다.

윌리엄스 이사는 "세나에 들어간 여러 부품 가운데 한국에서 공급한 캠샤프트도 있다"며 "대부분의 부품은 영국 내에서 조달하지만 기술력이 있다면 글로벌 공급 또한 열려 있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고성능 제품도 서서히 다양한 협업기회를 늘려 가는 것.
[르포]맥라렌은 왜 영국에서 미래를 준비하나

협업 기회 확대 뒤에는 맥라렌의 숨길 수 없는 고민이 있다. 여느 슈퍼카회사와 마찬가지로 점차 강화하는 배출가스 규제를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단순히 내연기관의 성능을 높이는 방식은 더 이상 곤란하다.

윌리엄스 이사는 "맥라렌도 오는 2022년까지 지금보다 월등히 고성능인 하이브리드 슈퍼카를 내놓을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 배터리 연구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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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생산이 3,000대 수준에 불과한 맥라렌이 하이브리드 시스템 개발의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따라 최근 저탄소 기술 개발에 적극적인 영국 정부와 손을 잡는다는 계획이다.

윌리엄스 이사는 "영국은 기본적으로 기술 DNA가 있다"며 "이미 차세대 친환경 슈퍼카 개발을 위한 경량화와 배터리부문에서 영국 내 대학 및 정부 산하 기술개발기관들과 협력체제를 구축했다"고 언급했다. 정부가 협업의 돗자리를 깔면 맥라렌이 다양한 기업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형태다.

도넬 홍보대사는 "미래에도 맥라렌이라는 고성능 브랜드를 유지하려면 탄소 배출 저감은 필수이지만 슈퍼카를 사는 소비자에게 아날로그적 주행감성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어 둘 사이의 간극을 기능적으로 어떻게 메울 것인가를 늘 고민한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스피커를 통해 배기사운드를 들려주는 것은 같지만 이 때 재생 음질이 맥라렌 고유의 엔진 사운드와 얼마나 유사할 것이냐가 관심이 된다는 뜻이다.
[르포]맥라렌은 왜 영국에서 미래를 준비하나

이런 측면에서 올해 본격 생산할 세나에는 캠브리지대학과 협업한 레이스 액티브 섀시 컨트롤 시스템을 적용했다. 이전 시스템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트랙 주행에 맞춘 제품인 만큼 양력 억제 기능이 뛰어나다. 아울러 탄소섬유 복합체로 만든 3세대 차체 덕분에 무게는 1,198㎏에 불과하다. 심지어 외부 패널 역시 대부분 탄소섬유이고, 시트 또한 탄소섬유 소재에 얇은 가죽만 씌운 형태다. 한 마디로 무게를 줄일 수 있는 곳이라면 모두 탄소섬유 소재를 썼다. 우리 돈으로 찻값이 11억 원에 달하지만 이미 모두 예약됐을 만큼 맥라렌의 미래에 있어 중요한 역할이다.

도넬 홍보 대사는 "맥라렌의 미래 또한 결국 기술에 달려 있고, 그렇다면 과거처럼 '나홀로' 개발은 지속적 성장을 담보하지 못한다"며 "열어 놓을 수 있는 건 모두 개방하고 이를 통해 기술협업체계를 구축해 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재의 슈퍼카 맥라렌이 미래에도 존재하려면 변신은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한 얘기다. 그리고 시작은 오는 3월 제네바모터쇼에 전격 공개할 세나가 될 것이란 점을 밝혔다.

워킹(영국)=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