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쿠다 다카유키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
롯데를 창업한 신격호 총괄회장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경영 현안을 챙겼다. 전문경영인 손에 맡겨 놓지 않았다. 주요 의사결정을 직접 해야 직성이 풀렸다. ‘셔틀 경영을 한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부자(父子)의 경영 스타일에 차이가 있지만 신동빈 회장 체제에서도 한국과 일본 롯데가 ‘하나의 롯데’로 움직인 건 같았다. 신 회장의 구속은 1948년 롯데 창립 이후 70년간 이어진 ‘하나의 롯데’에 금이 간 사건이 됐다. 한국롯데의 신 회장 지배체제는 흔들리지 않겠지만 일본롯데는 일본인 주주들에 의해 움직일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신 회장은 왜 사임했나

신 회장은 21일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회 직전 사임 의사를 표했다. “일본 경영진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다”는 게 롯데 관계자의 설명이다.
70년 이어진 '하나의 롯데' 균열… 한·일 롯데 '제 갈길' 갈 수도
일본에선 기업 경영자가 검찰에 기소만 돼도 해임하는 게 관례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신 회장이 경영 비리와 뇌물죄 혐의로 한국 검찰에 기소된 뒤에도 해임하지 않았다. 그룹 총수라는 대체 불가능한 지위 때문이었다. “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신 회장의 요구를 일본 경영진은 받아들였다. 하지만 1심에서 2년6개월의 실형이 선고되자 신 회장이 대표 자리를 유지할 명분이 약해졌다. 신 회장은 스스로 사임함으로써 ‘해임’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는 분석이다.

◆신 회장 경영권 문제없나

신 회장이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이사 지위와 부회장 직함은 유지하기로 했다. 일본 롯데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것은 아니란 얘기다.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회는 신 회장을 비롯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과 고바야시 마사모토 최고재무책임자(CFO), 고초 에이이치 일본 롯데물산 대표 등 8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2015년 7월 신 회장이 대표에 오른 뒤 줄곧 지지를 보낸 인사다. 신 회장의 구속과 대표이사 사임을 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신 회장 지지 의사를 철회할지 모른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롯데 측은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비해 신 회장의 한국롯데 지배력은 굳건하다. 롯데는 작년 10월 롯데지주를 출범시킨 뒤 90여 개 계열사 중 50개를 이 밑으로 편입시켰다. 롯데지주 최대주주인 신 회장은 특수관계인 등을 합쳐 4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지주사로 편입되지 않은 롯데물산 등 나머지 40여 개 계열사도 신 회장 측 인사가 포진하고 있다.

◆한·일 롯데 다른 길 갈 수도 있나

신 회장이 대표에서 물러남에 따라 일본 롯데홀딩스가 일시적으로 한국 롯데와 별개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롯데 측도 인정했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한국 롯데의 중간 지주사 역할을 하는 호텔롯데 최대주주다.

반면 한국 롯데 계열사가 보유한 일본 롯데 지분은 없다. 일본 경영진이 ‘우리만의 길을 가겠다’고 해도 한국에서 견제할 수단이 없다. 롯데지주 관계자는 “일본 롯데가 국내 경영에 적극 관여할 가능성은 낮지만 주주권 행사 차원에서 이사 선임 등 제한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동주 “이사직도 물러나야”

마지막으로 남는 문제는 신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인 형 신동주 전 부회장의 경영 복귀 가능성이다.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2015년 1월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에서 해임됐다. 이후 일본 롯데홀딩스의 세 차례 주주총회에서 신 회장 해임과 자신의 경영 복귀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롯데 측도 이에 대해 “신 전 부회장의 복귀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일본 경영진이 신동주 전 부회장의 경영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거두지 않았다”는 게 그 근거다.

신 전 부회장은 자신이 이끌고 있는 광윤사를 통해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28.1%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2~3대 주주 종업원지주회(27.8%)와 관계사(20.1%) 등은 과거 신 회장을 지지했다.

신 전 부회장은 이날 입장자료를 내고 “롯데그룹에 큰 혼란을 초래해 신뢰를 훼손시킨 신동빈 씨는 신속하게 이사 지위에서도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