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재무] "잠자는 자본시장 제도… IPO 초과배정옵션 활성화해야"
투자은행(IB) 업무를 하다 보면 전혀 활용되지 않는 ‘무늬만 제도’를 쉽게 접하게 된다. 기업공개(IPO) 초과배정옵션 제도가 대표적이다.

이 제도는 IPO 시 공모주식의 최대 15%까지 추가로 발행할 수 있는 옵션을 상장 주관사에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 영국, 일본을 포함한 주요 자본시장에서 IPO 초과배정옵션은 투자자들의 IPO 주식에 대한 수요를 증대하고 상장 후 주가의 변동성을 줄여줘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장치로 사용되고 있다. 1963년 미국의 그린슈 컴퍼니(Greenshoe Company)의 신규 공모주에서 유래돼 ‘그린슈 옵션(Greenshoe option)’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2014년 알리바바가 역대 최대 규모의 IPO를 기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IPO 초과배정옵션이 있었다. 페이스북 IPO에서도 주관사들이 초과배정옵션을 행사해 기존 공모 규모보다 많은 주식이 팔렸다.

국내에도 2002년 초과배정옵션 제도가 도입됐지만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 주요 자본시장에서 활성화된 IPO초과배정옵션 제도가 왜 국내에서는 활용되지 않고 있을까. IPO를 준비하는 기업으로서는 주식 초과배정으로 대주주 지분율이 희석될 것을 우려하고, 주관사 측면에서는 시장 조성 활동에 참여할 동기가 낮은 점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다.

미국에서 초과배정옵션 행사를 위해서는 차입 또는 무차입 공매도(naked short or uncovered short)가 가능해 주가변동에 따른 위험을 분산하고 시장 조성 활동을 위한 여러 가지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반면 국내에서 초과배정옵션을 행사하기 위해선 대주주로부터 차입하는 공매도(covered short)만 가능한데 현실적 제약으로 주식을 차입해 옵션을 행사하기 어렵다. 순매도 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매수가격 결정 방법, 공모주식의 수요예측, 배정 관행 등도 초과배정옵션 제도가 실행되는 데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요인이다.

국내에서 IPO 초과배정옵션 제도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무차입 공매도를 일정 조건에서 도입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무차입 공매도에 대해 여러 가지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IPO를 할 때만이라도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공모 규모의 일정 비율을 허용하고 무차입 공매도에 대한 공시의무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 현행 제도에서는 초과배정으로 인한 순매도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해당 주식을 매수하는 경우 공모가격의 90% 이상이어야 하지만, 공모가 이하에선 가격 제한 없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

수요예측과 공모주 청약 방법, 청약 관행도 개선해야 한다.

주관사는 인수위험을 줄이기 위해 철저한 기업 실사는 물론 공모주에 대한 정확한 수요예측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기관투자가와 일반투자자에게도 수요 예측에 참여하고 초과배정옵션을 행사할 기회를 제공한다면 투자자 형평성은 제고되고 IPO 초과배정옵션의 가격발견 기능은 더욱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