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2020년까지 D램 미세화 수준을 17나노미터(㎚·1㎚는 1억분의 1m)로 유지할 전망이다. 거의 매년 이뤄져온 D램 미세화 추세가 3년 가까이 멈추는 것이다. 미세화 진전 속도가 떨어지면 D램 공급량도 크게 늘어나지 못한다. 같은 크기의 웨이퍼에서 뽑아내는 D램 생산량에 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공급량 증가폭 둔화는 가격 상승세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세화의 역설’이다.

삼성, 나노공정 속도조절로 가격 주도권 쥔다
◆크게 느려진 D램 미세화

13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20년 이후 16나노 D램 양산에 나선다는 생산 관련 로드맵을 최근 수립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양산에 필요한 기술은 내년 하반기면 대부분 완성되겠지만, 이를 생산 현장에 적용해 실제 양산을 시작하는 것에는 1년 정도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끊임없이 미세화를 진전시켜왔다. 28나노 D램 양산을 시작한 2011년 이후에도 매년 1~3나노씩 미세화를 진행해 지난해 12월에는 17나노 D램을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로드맵에 따르면 16나노 D램 양산까지는 2년 이상 걸릴 전망이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D램 미세화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은 반도체 집적도가 2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이 1965년 나온 이래 처음이다.

D램은 전하를 저장하는 셀과 이를 작동시키는 구동회로로 구성된다. 17나노 D램은 구동회로선의 폭이 17나노라는 의미다. 회로폭이 줄어드는 만큼 셀은 물론, D램 전체 크기도 작아져 똑같은 면적의 실리콘웨이퍼에 담을 수 있는 반도체 수가 늘어난다. 삼성전자의 17나노 D램은 동일한 웨이퍼에서 18나노 D램보다 30% 많은 반도체를 생산한다. 20나노 이전에는 한 번에 3~5나노씩 미세화가 진행되며 미세화에 따른 생산 증가량이 한 번에 최대 70%에 이르기도 했다. 메모리반도체 업체들이 증설 없이 설비 개선만으로 D램 공급량을 늘릴 수 있었던 이유다. ○D램 증산 힘들어져

16나노 이후에도 D램의 미세화는 2~3년에 1나노씩 이뤄질 전망이다. D램 기능을 유지하면서 크기를 줄이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D램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셀 면적도 좁아져 전하를 담을 공간이 부족해진다. 반도체 업체들은 좁아지는 면적만큼 셀 높이를 올려 전하를 담을 공간을 확보하는 전략을 취한다. 하지만 높이가 어느 수준을 지나면 셀이 구조를 유지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저장된 전하가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과거에는 생산설비를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미세화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셀을 구성할 소재부터 새로 개발해야 한다.

미세화 진전이 지연되면 그만큼 D램 공급량 증가는 둔화된다. 공장을 새로 지으면 공급을 늘릴 수 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한 번에 15조원 안팎에 이르는 자금 부담을 이유로 증설에 나서지 않고 있다.

공급량 증가폭 둔화는 D램 가격 강세로 이어진다. 연 10~20% 수준인 세계 D램 수요 증가량을 겨우 따라가는 정도로만 공급이 늘어날 전망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높아진 난이도를 핑계로 D램 미세화 속도를 늦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미세화 속도가 과거보다 느려진 것은 사실이지만 삼성전자도 시장 상황에 맞춰 미세화 속도를 6개월에서 1년까지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