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처가 이건희 삼성 회장의 차명계좌에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법령해석을 내렸다. 이 같은 결정에 따라 이 회장뿐 아니라 차명계좌를 둔 동창회나 계모임, 문중 등에도 과징금이 부과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일 법제처에 이 회장의 차명계좌가 과징금 징수 대상인지 법령해석을 요청한 데 대해 법제처가 12일 ‘과징금 원천징수 대상’이라는 회신을 보내 왔다고 밝혔다.

금융위 관계자는 “법제처의 법령해석을 받아들여 과징금 부과 후속조치를 논의할 것”이라며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 주재로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 관계기관과 공동 태스크포스(TF)를 꾸려 13일 관련 회의를 열기로 했다”고 말했다.

법제처는 “금융실명법 시행 이후 해당 차명계좌의 자금 출연자가 따로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면 자금 출연자는 차명계좌를 그의 실명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금융기관은 금융실명법 부칙에 따라 과징금을 원천징수해야 한다”고 해석했다.

이번 법령해석은 이 회장의 차명계좌가 과징금 부과 대상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자 금융위가 법제처에 의뢰한 데 따른 것이다. 2008년 삼성 특검에서 밝혀진 이 회장의 차명계좌는 1021개로 4조5000억원 규모다. 이 중 1001개가 금융실명제 시행 이후(1993년 8월) 개설됐고, 20개는 실명제 시행 이전에 만들어졌다. 정부는 금융실명제 시행 때 2개월 내 기존 비실명계좌를 모두 실명으로 전환하도록 했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해당 자산의 60%(현재는 50%)를 과징금으로 물리기로 했다. 이후에 만들어진 차명계좌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다.

이에 따라 현행법상 차명계좌 1001개는 과징금 징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금융실명제 시행 전에 만들어진 20개 차명계좌에는 과징금을 물려야 한다는 게 국회와 금융위 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의 주장이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