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그 하이슬롭 보잉 최고기술책임자(CTO)가 11일 서울 광화문 서울파이낸스센터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항공산업의 기술 동향과 항공기의 미래 청사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그레그 하이슬롭 보잉 최고기술책임자(CTO)가 11일 서울 광화문 서울파이낸스센터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항공산업의 기술 동향과 항공기의 미래 청사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앞으로 10~20년 안에 미국 뉴욕에서 중국 상하이까지 2시간 내 비행하는 항공기가 개발되면서 극초음속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그레그 하이슬롭 보잉 최고기술책임자(CTO)는 11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미래의 항공기는 디자인에서부터 연료, 비행 방법에 이르기까지 지금과는 크게 다를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여러 기술적 난제가 해결되면서 50년 이내 극초음속 여행이 일상화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보잉은 지난달 중순 마하5(시속 6120㎞) 속도를 내는, 총알보다 다섯 배나 빠른 극초음속 항공기 ‘선오브블랙버드’의 컨셉트 디자인을 공개했다. 이런 속도를 견디기 위해선 소닉붐으로 불리는 소음과 고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엔진은 동체 속으로 들어가 ‘일체형’이 돼야 하며, 더 가볍고 열에 강한 소재를 써야 한다. 그는 “보잉은 2015년 무게는 스티로폼의 10분의 1에 불과하면서 탄소섬유만큼 강한 탄성을 지닌 금속을 개발했다”며 “비행기 동체에 적용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말했다. 도자기에 쓰이는 세라믹도 열에 강한 특성을 활용해 항공기 엔진부품 소재로 사용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신체가 멍을 스스로 치유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의 생체모방기술로 자가 치유 소재를 개발하고 있다. 작은 흠집 하나만으로 대형사고를 낼 수 있는 항공기의 한계를 자연에서 얻은 지혜로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2003년 2월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지상 60㎞에서 공중 분해된 사고도 왼쪽 날개에 생긴 작은 구멍 때문이었다.

대기 오염을 막고 연료 효율을 높이기위해 동력원도 다양해질 전망이다. 그는 기존 제트유(석유)를 쓰지 않고 바이오 연료나 태양광, 연료전지 등을 쓰는 항공기가 출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보잉은 식물성 기름과 폐식용유로 만든 ‘그린디젤’로 운항하는 787 항공기의 시험 비행을 마쳤다. 올해는 항공특송회사 페덱스와 손잡고 바이오 연료만을 사용하는 화물기의 시험 비행에 나설 예정이다.

하이슬롭 CTO는 “앞으로 민간 항공기도 수직 이착륙이 가능해지면서 활주로가 사라지고 드론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관측했다. 다만 자율운행 항공기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조종사 수요는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드론이 많아지면서 드론을 조종하는 사람이 더 필요하듯 항공기도 마찬가지라는 분석이다. 특히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4차산업혁명 기술로 안전하고 경제적인 운항이 가능해지면서 항공 사고율도 크게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항공기의 기술적 한계가 극복되면서 미래에 자동차 운전은 말타기와 같은 취미 활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항공 이동수단이 목적지와 시간의 제약이 많은 지상 이동수단을 서서히 대체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보잉은 전 세계 항공여객 교통량이 앞으로 20년간 연평균 4.7%의 높은 성장세를 보이면서 4만1000여 대의 신형 항공기가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하이슬롭 CTO는 “앞으로 항공우주의 시대는 수학자와 화학자가 이끌 것”이라며 “한국에도 기회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100년간 항공기술 개발을 이끈 학문은 항공역학이었지만 앞으로 100년은 소재와 알고리즘이 이끌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이 분야에서 우수한 한국 기업과 인재가 많다”며 “항공기술과 잘 접목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올해로 설립 102주년을 맞은 보잉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설립한 민간 우주탐사기업 ‘스페이스X’와 화성탐사 경쟁을 펼치고 있다. 보잉은 2023~2024년 화성탐사용 유인우주선을 쏘아 올리기 위해 역사상 가장 큰 ‘SLS로켓’을 개발 중이다. 하이슬롭 CTO는 “머스크보다 보잉이 먼저 화성에 인류를 보낼 것”이라며 “우리는 1968년 우주인을 안전하게 달에 보내고 귀환시킨 경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보잉은 50년 전인 1968년 인류 최초로 달을 탐사한 유인 우주선 ‘아폴로 8호’ 개발에 참여했고 1980년대 우주왕복선, 1990년대 우주정거장을 만들었다.

하이슬롭 CTO는 세계 최대 항공·우주기업인 보잉에서 차세대 항공기 및 우주 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그가 이끄는 전 세계 엔지니어만 4만5000여 명에 달한다. 그는 국내 기업과 기술협력을 논의하기위해 이번에 처음 방한했다. 보잉은 대한항공,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현대글로비스, 휴니드테크놀러지스 등으로부터 한 해 5억달러 이상의 부품 및 서비스를 구매하고 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