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설 흘리는 미국 GM… 모르쇠 일관하는 정부
지난 7일 밤 11시, 정부 관계자들이 기자에게 잇달아 전화를 걸어왔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 명의로 보도해명자료를 낼테니 “양해를 구한다”는 말이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본사가 한국 정부와 2대 주주인 산업은행에 한국GM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포괄적 지원을 요구했다’는 본지 보도(2월8일자 A1, 3면)를 놓고서다. 기사엔 GM이 한국 정부와 산은에 한국GM에 대한 △증자 참여 △대출 재개 △세금 감면 등을 요청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기자는 정부 관계자들에게 “틀린 부분이 있다면 수정하겠다. GM 제안이 아예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냐”고 재차 물었다. 하지만 동문서답이었다. “해명자료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해해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이후 정부는 ‘GM 측으로부터 3조원 규모의 유상증자와 관련해 구체적인 제안을 받은 바 없음’이란 짤막한 해명자료를 냈다. 모호했다. 증자 액수 등 GM의 제안이 구체적이지 않았다는 건지, 제안 자체가 구체적이지 않고 원론적 수준이었다는 건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과연 정부 말대로 GM 측의 구체적 제안은 없었던 걸까. 있었다. 본지 취재 결과 배리 엥글 GM 해외사업부문(GMI) 사장은 올 초 백운규 산업부 장관과 산은, 금융위 관계자 등을 잇달아 만났다. 이후 GM 부사장급 이하 실무 임원들이 정부와 산은 관계자들을 만나 ‘한국GM 생존 계획(viability plan)’을 설명하고 증자 참여 등 포괄적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엥글 사장은 정부 및 산은 관계자들과의 면담을 재추진할 계획이다. 재차 지원을 요구하고 ‘답’을 듣기 위해서다. 이젠 한국 정부와 산은에 대한 GM의 자금 지원 요청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비밀’이 됐다.

더구나 8일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은 GM 본사의 자금 지원 요청 등에 대해 “정부와 산은 등 이해관계자들과 긴밀히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노동조합과 연 올해 임단협 교섭 자리에서다. 노조 측이 본사의 자금 지원 요구 및 한국 정부, 산은 등과의 협상 등에 대한 질문을 쏟아내자 내놓은 답이다. 한국 정부에 자금 등 지원을 놓고 협의 중이라는 뜻이다. 정부가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내놓은 해명자료가 더욱 궁색해 보였다.

정부의 ‘모르쇠 해명’은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을 조율해야 하는 한국GM 문제를 당장 건드리고 싶어하지 않는 공무원 특유의 ‘복지부동’도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정부가 한국GM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만약 GM이 철수할 경우에 대비한 ‘플랜B’가 있는지도 궁금하고 답답하다. 한국GM 구조조정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산업부가 맡고 있는 점도 의아하다. 한국GM 경영 정상화에 필요한 ‘돈줄’을 쥔 산은과 주무부처인 금융위에 깔린 전문가들을 제쳐놓고, 구조조정판의 백면서생(白面書生) 격인 산업부가 지휘봉을 든 것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GM은 끊임없이 한국 철수설(說)을 흘리며 호소와 압박을 병행하고 있다. 이젠 GM 요구를 공개하고 향후 처리 방안을 다각도로 논의해야 할 때다. 30만 명 일자리가 걸린 한국GM의 회생과 구조조정, 아니면 철수에 따른 대응방안 마련 등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이고 진정성 있는 대응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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