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에 2조 투자"… '탈정유' 나선 GS칼텍스
허진수 GS칼텍스 회장(사진)이 총 2조원을 들여 ‘석유화학사업 강화’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와 경유를 생산하는 전통적인 정유사업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글로벌 석유화학제품 수요 증가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 수익성이 높아지고 있는 점도 대규모 투자에 나선 배경으로 꼽힌다. ▶본지 2017년 11월15일자 A1, 5면 참조

어디에 투자하나

GS칼텍스는 전남 여수 제2공장 인근 43만㎡ 부지에 2조여원을 투자해 올레핀 생산시설(MFC)을 짓기로 했다고 7일 발표했다. 올레핀은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과 폴리에틸렌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에틸렌은 플라스틱과 비닐 같은 석유화학제품 대다수의 기초 원료로 쓰인다. 올레핀은 원유 부산물인 나프타를 가공하는 나프타분해설비(NCC)가 필요해 그동안 LG화학과 롯데케미칼 등 석유화학업체들이 시장을 주도해 왔다.
GS칼텍스 전남 여수공장 전경.
GS칼텍스 전남 여수공장 전경.
GS칼텍스는 연말까지 MFC 설계작업을 마치고 내년 착공에 들어가 2022년부터 상업 가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생산 규모는 에틸렌이 연간 70만t, 폴리에틸렌이 연간 50만t 규모다. MFC는 나프타를 원료로 투입하는 기존 NCC와 달리 나프타는 물론 액화석유가스(LPG)와 부생가스 등 다양한 원료를 사용할 수 있어 사업성이 좋은 편이다.

허 회장은 2013년 GS칼텍스 대표에 취임한 직후부터 사업 다각화를 통한 ‘탈(脫)정유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해 왔다. 전기차와 수소차 확대에 따른 화석연료 사용 감소 가능성이 커지는 등 경영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신성장동력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폐목재나 폐농작물을 활용해 휘발유 등 차량용 연료를 만드는 바이오부탄올 시범 공장 등이 대표적이다.

허 회장은 지난 1월 신년사에서도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도록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겠다”며 석유화학사업 투자를 예고했다.

이번 MFC 투자는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GS칼텍스는 건설 기간에 연인원 약 200만 명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1조원의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를 거둘 것으로 분석했다. 설비가 가동에 들어가면 300여 명 이상의 신규 고용도 창출된다.

"석유화학에 2조 투자"… '탈정유' 나선 GS칼텍스
경쟁력은 있을까

자회사인 SK종합화학을 통해 86만t 규모의 NCC를 갖춘 SK이노베이션을 제외한 다른 정유사들은 그동안 원유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나프타를 LG화학과 롯데케미칼 등 NCC 설비를 갖춘 석유화학업체에 판매했다. GS칼텍스는 MFC 투자를 통해 석유화학 공정의 첫 단계인 나프타를 분해해 에틸렌을 만드는 업스트림부터 폴리에틸렌을 생산하는 다운스트림까지 두루 갖추는 만큼 연간 4000억원 이상의 추가 영업이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경기 회복에 힘입어 폴리에틸렌 등 기초유분 수요가 늘고 있는 점도 호재다. 시장조사업체인 IHS에 따르면 글로벌 폴리에틸렌 수요는 연간 1억t에 달하며 매년 수요가 4.2%가량 증가하는 추세다.

변수는 유가와 공급과잉 문제다. 국제 유가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연장 등으로 배럴당 65달러를 웃돌며 3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유가가 오르면 에틸렌 등 석유화학제품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연말까지 미국에서 가동 예정인 에틸렌 공장이 903만t 규모로 국내 업체들의 연간 에틸렌 생산 능력(904만t)과 맞먹는다는 점도 부담으로 꼽힌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