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정형식 판사 '신의 한 수' 뒀다… 정경유착 근절에 경종 울린 판결"
재계엔 엄중한 경고도 잊지 않아"
당초 법조계와 경제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항소심 결과가 1심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 부회장에게 씌워진 뇌물죄 혐의 등을 판결에 관철시키기 위해 총력전을 펼쳐온 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심 판결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2심 재판부가 기존 판결의 골격을 크게 흔들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였다. 문재인 정부를 떠받치고 있는 ‘촛불 주도층’의 압박도 재판부에 큰 부담을 줄 것으로 예상됐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판결 직전까지만 해도 재판부가 정부와 촛불 여론의 눈치를 볼 것으로 생각했다”며 “마음에 안 드는 판결이 나오면 해당 판사와 가족까지 ‘신상털기’에 나서는 요즘 세태도 이 부회장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본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 부장판사는 이런 예상을 깨고 1심과 다른 법리를 적용해 이 부회장의 주요 혐의에 대부분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특히 ‘이 부회장 무죄=박 전 대통령 무죄’라는 등식을 깨면서 법리에 근거한 판결을 내릴 수 있었다는 것이 경제계의 평가다. 현행 형사법 체계에서 뇌물을 준 사람보다 받은 사람의 책임이 더 무겁다는 이날 판결 논리가 대표적이다.
정 부장판사는 “요구형 뇌물사건은 공무원의 요구가 강요나 직권남용을 동반할 경우 공여자보다 (수수자인) 공무원에 대한 비난이 상대적으로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뇌물죄 혐의가 무겁다고 해서 이 부회장까지 엄하게 처벌해야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정 부장판사는 그러면서도 재계에 정경유착 근절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잊지 않았다. 그는 “모든 정황을 고려하더라도 공무원의 비위에 연루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 경영진에 부여된 책임”이라고 일갈했다. 4대 그룹의 한 고위임원은 “앞으로 작은 연결고리라도 있다고 판단된다면 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의미의 경고를 내렸다고 생각한다”며 “무척 깐깐한 스타일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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