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교육과 무상보육 등 모든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가 소득분배 개선과 빈곤 감소에 효과적이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처음 나왔다. 무상급식은 물론 아동수당과 누리과정 등 정부와 정치권이 앞다퉈 추진하는 보편적 복지 확대가 불평등 해소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다. 반면 건강보험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의료는 상대적으로 노인과 저소득층에서 소득재분배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무상교육·무상보육, 소득재분배 효과 작다"
◆무상복지 소득 효과 첫 분석

6일 경제학계에 따르면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전 통계청장)는 지난 1일 춘천 강원대에서 열린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사회적 현물이전의 소득재분배 효과분석’ 논문을 발표했다. 사회적 현물이전은 국가가 국민에게 현물로 제공하는 의료와 교육, 보육 등 상품과 서비스를 말한다. 무상복지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 현물이전 효과를 반영한 소득분배지표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통계청이 매년 발표하는 지니계수와 소득 5분위 배율 등 분배지표는 조세와 정부의 현금이전지출 등을 반영한 처분가능소득(현금소득)만을 기초로 작성된다. 유 교수는 “앞으로 복지지출 확대에 따라 현물이전 비중이 더욱 높아질 것임을 고려하면 소득분배 효과 측정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영국 호주 등 선진국은 이미 현물이전 효과를 반영한 분배지표를 발표하고 있다.

이번 연구는 통계청이 한국은행·금융감독원과 공동으로 내놓은 ‘2014년 가계금융복지조사’와 교육과 의료 등 각종 복지서비스 관련 행정자료를 활용해 이뤄졌다.

소득분배 개선 효과는 분야별로 큰 차이를 보였다. 특히 교육과 보육은 의료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선 효과가 미미했다. 교육은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이 심함)를 0.019, 5분위 배율을 0.59, 빈곤율을 1.2%포인트가량 낮췄다. 심지어 노인빈곤율은 소폭 상승시켰다.

보육은 소득분배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유 교수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한 보편적 복지 형태로 제공되는 교육과 보육은 고소득층에서도 상당한 소득 증가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보편복지’보다 ‘선별복지’가 낫다

이번 연구 결과는 무상급식과 아동수당 등 보편적 복지 확대 정책이 정부의 의도대로 ‘소득분배 개선을 통한 소득주도성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시사한다. 유 교수는 “무상교육과 보육은 추가로 확대하더라도 중산층이 상당수 혜택을 누리게 돼 소득재분배나 빈곤율 감소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며 "한정된 재원을 감안하면 저소득층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소득분배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보편적 복지보다는 저소득층 등 특정 계층을 타깃으로 한 ‘선별적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교육·보육과 달리 의료는 소득분배 개선(0.344→0.318)과 빈곤율 감소(16.3%→13.2%) 등에서 효과가 모두 뚜렷했다. 특히 의료는 노인빈곤율을 46.9%에서 36.6%로 13.3%포인트나 낮췄다. 유 교수는 “저소득층과 노인 등 상대적으로 의료비 지출 부담이 큰 계층에서 소득이 크게 상승했다”며 “한국의 의료보험제도가 그만큼 소득재분배에 효과적임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노인 기대수명과 빈곤율 모두 세계 최고’라는 한국의 역설(패러독스)을 어느 정도 해소해줄 수 있다는 것이 유 교수의 설명이다. 의료서비스 효과를 반영한 한국의 노인빈곤 실태는 생각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