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의 순환출자 해소 등 지배구조 개선 상황과 추진 계획을 낱낱이 공개하고 나섰다. 대기업들이 지난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두 차례에 걸쳐 한 간담회에서 요청받아 진행한 ‘자발적 개혁’에 대한 일종의 ‘성적표’다. 공정위는 상반기 내로 재계와의 또 다른 간담회를 열고, 하반기 이후에도 반기별로 대기업 지배구조 개편 현황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배구조 개편 계획을 세우지 못했거나 속도가 늦은 대기업에 대한 압박이 날로 거세지는 움직임이다.
'지배구조 개선 계획' 자발적으로 제출하라 해놓고… 연 2회 '채점'해 대기업 압박하겠다는 공정위
◆공정위, “변화 확산 위해 공개”

공정위는 5일 발표한 ‘대기업집단의 자발적 소유지배구조 개선 사례’에서 지난해 김 위원장과 재계의 간담회 이후 발표됐거나 추진 중인 대기업집단(자산 5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 지배구조 개편안을 소개했다. 신봉삼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브리핑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앞으로 더욱 확산되기를 기대하는 차원에서 최근 기업들이 공개한 구조개편 사례를 분석·발표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대기업집단 57곳 가운데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현대중공업 CJ LS 대림 효성 태광 등 10곳이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옥고를 치르고 있던 삼성은 간담회에 참석한 그룹 중에서 유일하게 개편안을 내지 않았다. 유형별로는 소유구조 개선 10건, 내부거래 개선 4건, 지배구조 개선 2건이었다.

소유구조 개선과 관련해서는 롯데 현대중공업 대림이 올해 상반기 안에 순환출자를 해소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주회사 전환은 지난해 10월 롯데가 단행했고, 효성은 연내로 계획하고 있다. SK LG CJ LS는 지주회사 체제 밖에 있는 계열사를 내부로 편입시키는 등 현행 지주회사 구조를 개편하고 있다.

내부거래 개선은 대림과 태광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인 계열사의 총수일가 지분을 해소하거나 다른 계열사와의 내부거래를 중단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 이 외에 SK는 계열사 SK이노베이션과 SK(주)가 지난해 전자투표를 도입했고 현대차는 현대모비스 등 계열사 네 곳이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사외이사에 대한 주주 추천제도를 도입하기로 하는 등 지배구조 개선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평가받았다.

공정위는 한화 총수일가가 지난해 8월 보유한 정보기술(IT) 계열사 한화S&C 지분 45%가량을 매각하기로 한 사례는 단순한 규제 회피 차원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판단을 유보했다.

◆‘자발적’으로 개혁하라지만…

김 위원장은 지난해 6월 취임 직후부터 대기업에 지배구조 개편을 주문했다. 취임 직후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 경영인과의 1차 간담회에서 “재벌개혁을 위한 자발적인 모범 사례를 보여달라”고 요청한 데 이어 11월 롯데를 더한 5대 그룹 경영인과의 2차 간담회에서는 “대기업의 개혁 의지에 의구심이 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공정위는 이후 대기업의 공익재단 운영과 지주회사 수익구조 실태를 조사하는 등 압박에 나섰다.

이번 공정위 발표 내용은 결국 재계가 등 떠밀려 한 ‘비(非)자발적 개혁’의 결과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는 3월 주주총회 시즌이 끝난 뒤 상반기 안에 재계와의 3차 간담회를 열고 지배구조 개편 방향을 추가로 논의할 예정이다. 또 매년 반기별로 대기업집단 지배구조 개편 내용을 분석·평가해 공개할 방침이다. 신 국장은 기업 압박 논란과 관련해 “포지티브 캠페인을 통해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지 찍어서 뭘 해달라고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