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기관 관련 산업 위축, 부품 산업 일대 전환

지난 1월 미국 라스베가스 CES에서 만난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의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동력의 전기화가 진행되는 속도가 생각보다 빠른 만큼 협력업체도 서둘러 산업 전환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한 마디로 최대한 협력 관계는 유지하겠지만 동력 전환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부품 업체는 도태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간 지속적으로 부품 업체에 전기화 대비를 알려왔다는 점에서 보호(?)를 바란다면 그건 착각이라는 메시지를 은근히 던진 셈이다.
[하이빔]전기차, 엔진 부품의 고민은 깊어진다

실제 속도는 빠르다. 그리고 여기에는 정부도 적극적이다. 1회 충전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문제없이 달릴 수 있는 전기차, 속도가 2배 이상 빠른 충전 기술을 2022년까지 개발한다는 목표 아래 과감한 예산 편성을 약속했다. 또 전국 고속도로 5,000㎞를 지능형으로 바꿔 실시간 주변 정보를 자율주행차에 제공하고 자동차 간 통신망도 구축키로 했다. 계획이 달성되면 2022년이면 전국에 급속 충전기만 1만기에 달하고, 이 경우 전기차의 불편함은 사라지게 된다. 당연히 완성차기업은 전기차 가격을 내연기관 수준으로 맞추려 할 것이고, 소비자는 상황에 따라 내연기관 또는 배터리 전기차와 수소전기차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상용차 전기화의 빠른 전개가 변화 속도 높일 것

하지만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의 반응은 '그래도 내연기관'이라는 입장이 적지 않다. 2022년에도 연간 판매되는 180만대의 신차 가운데 80% 이상은 내연기관이 유지될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그런데 전기차 및 자율주행차의 투자 비용이 내연기관에서 얻어지는 현재의 완성차회사 사업 구조를 감안하면 이들의 얘기가 틀린 것도 아니다. 폭스바겐이 2020년까지 20%를 전기차로 바꾸겠다는 것은 현재 1,000만대 기준으로 내연기관 800만대와 전기차 200만대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전체 판매를 1,400만대로 늘리고 이 가운데 260만대를 전기차로 하겠다는 복안이다. 결국 내연기관은 지금보다 100만대 이상 커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상용차의 변곡점이다. 승용은 조금 늦을 수 있지만 정해진 이동거리를 반본적으로 오가는 상용차의 전기화 흐름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정부가 버스, 택시, 소형트럭 등을 전기차로 집중 전환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 실제 올해부터 5개 내외 지자체를 선정해 내년부터 10%씩 전기차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이 경우 2030년까지 국내에서 운용되는 상용차는 100% 전기차로 대체된다.
[하이빔]전기차, 엔진 부품의 고민은 깊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부품사의 고민은 적지 않다. 전기차는 내연기관과 기본적으로 동력 발생 장치가 달라서다. 머플러가 필요 없고, 협력사 규모가 상당한 내연기관 부품도 사라진다. 휘발유나 경유를 담는 연료 탱크도 없어진다. 변속기도 지금과 다르고 엔진오일 교체도 불필요하다. 따라서 자동차 산업 전체 고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를 두고 내연기관 산업의 절반 이상이 없어진다는 우려가 있는 반면 전기차 관련 부품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것이란 청사진도 있다.

하지만 전기화가 진행될수록 내연기관 산업은 쇠퇴하고, 일자리의 절대 숫자 또한 줄어드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전기차 산업이 만들어 낼 신규 일자리 규모가 기존 내연기관을 대체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해서다. 정부 입장에선 전체 자동차산업을 키워 일자리를 보전하는 방안을 떠올리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성장세가 과거만큼 폭발적이지 않고, 새롭게 떠오르는 시장은 내연기관을 건너 전기화로 직접 뛰어가고 있어서다. 마치 2G에서 3G와 4G를 건너 5G로 직행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자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의 발길도 분주하다. 하지만 답답함을 호소하는 기업도 많다. 대세를 놓치면 생존 위기가 온다는 사실을 알지만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막막해서다. 해결책으로 적극적인 M&A 조언이 쏟아지지만 쉽게 결정은 내리지 못한다. 오랜 시간 '나의 것, 내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성차회사가 내연기관으로 만든 수익을 전기차에 투자하는 것처럼 내연기관 부품 업체도 자금이 필요한 전기차 부품사와 손잡는 M&A를 주목해야 한다. 홀로 독자 생존을 고집하는 것 자체가 위험을 초래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어서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