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의 정책 과제

소득 3만달러 때 '잃어버린 10년'
일본 전철 피하려면 생산성 높여야
독일은 구조개혁으로 '4만달러 벽' 깨

노동 개혁으로 청년고용률 높이고
기업 혁신 위한 제도적 뒷받침을
민간 싱크탱크 FROM 100과 한국경제신문사는 지난달 29일 서울 광화문 한국생산성본부에서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의 정책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박철성 한양대 금융경제학과 교수, 현혜정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FROM 100 대표), 정혁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강성민 김앤장 고문,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민간 싱크탱크 FROM 100과 한국경제신문사는 지난달 29일 서울 광화문 한국생산성본부에서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의 정책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박철성 한양대 금융경제학과 교수, 현혜정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FROM 100 대표), 정혁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강성민 김앤장 고문,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일본은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달성한 시점에 ‘잃어버린 10년(1991~2001년의 장기 경기침체)’을 겪기 시작했다. 한국도 제대로 성장 고삐를 죄지 않으면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정혁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경직적이고 폐쇄적인 노동시장 개혁 없이는 청년 고용률을 끌어올릴 수 없다.”(박철성 한양대 금융경제학과 교수)

한국은 올해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경계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29일 서울 광화문 한국생산성본부에서 민간 싱크탱크 FROM 100과 한국경제신문사가 연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의 정책 과제’ 토론회에서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2만9700달러로 추정된다. 올해는 3만2000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수치에 현혹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국민소득 증가가 일자리 확대나 국민의 체감경기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장기 성장을 위한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인구 고령화, 저(低)성장 기조 등으로 자칫하면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로 나가지 못한 채 다시 2만달러 벽에 갇힐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장기 성장정책 안 보여”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도약하려면 한두 차례 ‘깜짝 성장’이 아니라 장기적인 성장 기반이 갖춰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도 경제 전반의 체질 개선보다 원·달러 환율 하락(원화 강세)이나 반도체 등 특정 산업 중심의 수출 호황에 기댄 측면이 크다는 인식에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는 정책은 장기적인 생산성 향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많다. 법인세율 인상,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제로(0) 등이 그런 사례라는 것이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성장의 원인은 대부분 공급 요인(생산성 정체)에 집중돼 있는데, 정부의 경제정책은 소득주도 성장 같은 수요 측면에만 쏠려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지난해 성장률이 3년 만에 3%대를 회복한 건 한국 경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아서가 아니라 해외 경제의 강한 회복세 때문”이라며 “지지부진한 기술 진보, 인구구조 변화, 생산성 정체, 자본 축적에 기댄 성장의 한계 등으로 장기 성장률이 하락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노동계 편향적, 분배 위주 경제정책이 한국 경제에 부담을 줄 것이란 의견도 나왔다. 정혁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가 되면 단순한 상품보다 고차원 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많아지기 때문에 생산성을 높이지 않으면 성장이 멈춘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 정부 출범 후 국가의 직접적인 개입이 커지고 이 과정에서 혁신을 어렵게 하는 경제정책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시장, 정부, 공동체가 갖고 있는 각자의 역할이 존중되고 정부는 달라진 환경에 맞게 조건과 규칙을 만드는 ‘룰 메이커’ 역할에 그쳐야 한다”며 “성장을 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진한 노동개혁도 경제에 부담

노동시장 개혁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박철성 한양대 금융경제학과 교수는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은 선진국에 비해 한국이 크게 뒤처진 부문이 바로 노동시장”이라고 말했다. 노동시장 개혁 없이는 청년 고용률을 높이기 어렵다고도 했다.

과거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에 도달한 국가들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이때 노동, 복지, 교육, 연구개발(R&D) 등에서 개혁을 통해 새 판을 짠 독일 같은 국가는 4만달러의 벽을 넘었지만 구조개혁을 소홀히 한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은 다시 2만달러대 아래로 고꾸라졌다.

박 교수는 “노동시장은 제도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인건비 부담이 늘면 고용이 증가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또 “한국은 해고에 대한 규제가 다른 국가에 비해 강해 노동 유연성이 떨어진다”며 “이렇게 되면 기업들이 최대한 고용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려고 하고 사회 경험이 부족한 청년 취업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면 단기적으로는 해고가 늘더라도 사회가 흡수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된다면 고용률 상승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급한 산업구조 개편

전문가들은 산업 경쟁력 강화를 강조했다. 주력산업 분야에서 한국과 신흥국의 격차가 좁혀지고 있는 데다 ‘거미줄 규제’로 신산업이 성장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에서다. 현혜정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는 “과거 성장동력이던 제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데다 잇단 구조조정 실패로 일본처럼 장기 불황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며 “기업은 수요 측면에서 글로벌화, 공급 측면에서 혁신이 필수”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기업들이 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장기 연구가 가능한 기반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수출 일변도의 경제 구조 탈피와 주력산업의 구조개편, 신산업 육성은 핵심 과제”라며 “‘반짝인기’에 기댄 일회성 정책이 아니라 기업의 끊임없는 혁신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 FROM 100은

FROM 100은 한국 대표 지식인 100여 명이 참여하는 민간 싱크탱크다. 미래(future), 위험(risk), 기회(opportunity), 행동(movement)의 머리글자에 숫자 100을 붙인 이름이다.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FROM 100 대표) 주도로 2016년 10월 출범했다. 연구력이 왕성한 중견 학자와 신(新)산업 분야 젊은 지식인이 주축이다.

한국경제신문사는 지난해 FROM 100과 총 10차례에 걸쳐 문재인 정부의 정책 과제를 주제로 연속 토론회를 열었다. ‘벤처 활성화와 정보기술(IT)·금융산업’ ‘4차 산업혁명 연구개발(R&D) 전략’ ‘일자리 창출과 노동시장’ ‘고령화 정책’ ‘지역 균형발전 전략’ ‘소득주도 성장’ 등을 주제로 정부가 해야 할 ‘액션 플랜’을 다뤘다.

올해는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앞두고 한국 경제가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와 정책 방향을 주제로 연중 토론회를 연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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