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여름, LG전자 건조기 개발팀이 있는 경남 창원2공장에서 폐건조기를 실은 트럭 10여 대가 빠져나왔다. 전력 소모량을 기존의 25% 수준으로 줄인 히트펌프 건조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제조된 시제품들이었다. 3년여의 개발 기간에 생산된 건조기 시제품은 1000여 대에 달했다. 한국 건조기 시장에서 LG전자가 70%의 시장점유율을 달성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이 같은 노력이 축적돼 올해 LG전자에서 생활가전 사업을 담당하는 H&A사업본부의 매출은 처음으로 2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20조 먹어치울 LG전자 '용감한 형제들'
세이프가드 악재에도…

2일 전자업계와 증권업계에 따르면 LG전자 H&A사업본부는 올해 20조5000억원 안팎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생활가전 사업으로 연매출 20조원 고지에 오르는 것은 글로벌 기업 중에서 미국 월풀에 이어 두 번째다.

2015년까지 5년간 16조원 안팎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던 H&A사업본부의 매출은 2016년부터 빠르게 늘어 지난해 19조2261억원을 기록했다. 수익률도 높아졌다. 2011년 3948억원에 불과하던 영업이익은 지난해 1조4890억원으로 4배 가까이로 뛰었다.

키움증권 등 6개 증권사는 H&A사업본부가 올해 매출 20조4529억원, 영업이익 1조5747억원을 올리며 실적 호조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에 따른 충격은 지난해 4분기 수익에 이미 반영됐다. 4분기 H&A사업본부의 영업이익은 807억원으로 전분기(4249억원) 대비 5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세이프가드 적용 전에 세탁기 제품을 미국에 통관하며 운반비와 창고임대료 등 물류비가 늘어난 탓”이라며 “그만큼 세이프가드가 올해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상쇄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 시장 열고, 새 제품 만들고

LG전자 H&A사업본부의 매출 확대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시장을 새로 열거나, 기존 시장의 강자와 싸워 이룩한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난달 한국소비자원 조사에서 세계 1위 다이슨을 압도하는 것으로 평가된 무선청소기 ‘코드제로 A9’이 대표적이다. 모터가 청소기 헤드가 아니라 손잡이에 있는 상중심 구조를 구현하기 위해 모터의 부피를 3년 사이 80% 줄이고, 분당 회전 수는 5배로 늘렸다. 이 과정에서 1000개가 넘는 모터를 새로 제조하고 폐기했다.

누적 판매량 20만 대에 육박한 의류 관리기 ‘스타일러’는 2011년 LG전자가 첫선을 보이기 전만 해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종류의 가전제품이었다. ‘LG전자 직원들만 알고 산다’던 스타일러는 2015년 2세대 제품을 출시하는 등 꾸준한 기능 향상에 입소문까지 더해지며 월 1만 대가 판매되는 효자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축적된 노하우와 다른 LG 계열사들과의 시너지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2016년 내놓은 ‘퓨리케어 정수기’는 물을 식힐 때는 냉장고, 덥힐 때는 전기레인지의 핵심 기술이 적용됐다. 경쟁사 제품들과 비교해 더 섬세한 수온 제어가 가능한 이유다. 정수기의 핵심인 필터는 관계사인 LG화학의 기초소재연구소가 개발했다. 이렇게 개발한 정수기는 관련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지난해 판매량이 전년 대비 7배 늘었다. 무선청소기에도 LG화학의 BMS(배터리 매니지먼트 시스템)가 적용됐다.

LG전자는 가전제품의 해외 출시를 늘려 매출을 계속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송대현 LG전자 H&A사업본부장(사장)은 “프리미엄 제품 출시를 늘려 매출을 계속 키워가겠다”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