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학회가 주관한 ‘2018 경제학 공동 학술대회’가 1일 춘천 강원대에서 열렸다. 구정모 한국경제학회장(강원대 경제학과 교수·앞줄 맨 왼쪽), 김경수 차기 한국경제학회장(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왼쪽 두 번째) 등 참석자들이 발표를 듣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한국경제학회가 주관한 ‘2018 경제학 공동 학술대회’가 1일 춘천 강원대에서 열렸다. 구정모 한국경제학회장(강원대 경제학과 교수·앞줄 맨 왼쪽), 김경수 차기 한국경제학회장(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왼쪽 두 번째) 등 참석자들이 발표를 듣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법인세율 인상,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 등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경제학자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학자들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저임금을 좇아 저효율 중소기업이 대거 중국으로 공장을 옮겼다면 이번에는 한·미 간 법인세율 역전으로 고효율·고기술 대기업 중심의 ‘2차 엑소더스’가 벌어질 것이란 우려를 제기했다. 한국 대표 경제학자들이 모여 1일 춘천 강원대에서 연 ‘2018 경제학 공동 학술대회’에서다.

조장옥 서강대 명예교수(전 한국경제학회장)는 주제발표에서 “미국은 법인세 최고 세율을 35%에서 21%까지 대폭 낮췄는데 우리는 거꾸로 22%에서 25%로 올렸다”며 “미국 등 해외로의 기업 유출·이전이 본격화된다면 한국 경제는 상당히 괴로운 시기를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8 경제학 공동학술대회] "한국·미국 법인세율 역전에 대기업 엑소더스 우려"
조 교수는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이 멈춘 시점으로 1992년을 지목했다. 한국이 중국과 수교한 해이기도 하다. 그는 “중국과 수교한 이후 한국의 저효율 중소기업들이 높은 노동비용을 피해 중국으로 탈출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미 간 법인세율이 역전된 올해는 1992년만큼이나 한국 경제에 의미심장한 해로 기록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과 법인세율이 역전되면서 일어날 새로운 기업 엑소더스의 주체는 저효율 중소기업이 아니라 고효율·고기술 대기업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관측했다.

조장옥 서강대 명예교수는 “지금 한국은 일본의 1990년대와 매우 비슷하다”며 ‘일본형 장기침체’의 발생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는 “2012년 이후 한국의 제조업 생산성이 빠르게 하락하면서 장기 저성장기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며 “노동투입량이 줄어 자본생산성이 감소했다는 실물가설에 따르면 일본형 장기침체의 가능성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이어 조 교수는 “최저임금의 빠른 인상,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무리한 정규직화와 같이 자본생산성을 하락시키는 정책이 일본의 1990년대와 마찬가지로 무분별하게 시행되고 있다”며 “모든 경제문제를 정부의 시장개입과 규제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청와대와 정부의 안이한 인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잘못된 개념에 집착하는 청와대 참모진의 정책 개입은 ‘경제 적폐’의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며 “정부도 단기부양을 위해 재정정책을 남발하는 나쁜 습성을 버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전체회의에서는 소득주도성장을 둘러싼 논쟁도 벌어졌다. 대표적인 소득주도성장론자로 꼽히는 주상영 건국대 교수(국민경제자문회의 거시경제분과 의장)는 주제발표에서 “분석 결과 노동소득분배율 증가가 투자와 순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오히려 소비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쳐 내수경기 회복에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 교수는 투자와 생산성 등 공급 측면 요인을 강조하는 주류학계의 견해에 대해선 “소득주도성장론이 등장한 배경에는 ‘소비부진-투자부진-고용부진-소득부진’의 악순환이 놓여 있다”며 “단순히 투자를 활성화하고 생산성을 높이라고 외친다고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주 교수는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관련해선 ‘속도조절론’을 꺼내들었다. 그는 “최저임금을 인상하겠다는 정책방향은 옳지만 ‘최저임금 1만원’ 목표의 조기 달성은 경제에 불필요한 충격을 줄 수 있다”며 “대신 매년 명목성장률을 2~3%포인트 초과하는 수준에서 인상률을 정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강성진 고려대 교수는 “소득주도성장론에서 소득(임금)은 정부 또는 제도나 사회적 합의에 의해 주어지는 것으로 간주된다”고 전제한 뒤 “과연 정부가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소득이 오를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또 저소득층의 한계소비성향을 끌어올려 내수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소득주도성장론의 논리에 대해선 “중요한 건 소비성향이 아니라 거시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는 규모”라며 “고소득층이 평균적으로 소비성향은 낮더라도 소비 규모 자체는 저소득층보다 훨씬 클 수 있다”고 반박했다.

서비스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선 대규모 점포 출점제한 등 진입규제 정책을 완화해야 한다는 연구결과도 공개됐다.

전현배 서강대 교수는 “대형마트 등 현대화된 대형체인의 확장은 지역 내 중소형 상점의 진입과 퇴출을 촉진해 소매업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지역경제 성장을 위해선 진입규제와 기존 업체에 대한 지원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생산성이 높은 사업체 중심으로 구조변화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제언했다.

춘천=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