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거래 실명제로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기존 대형 가상화폐거래소 네 곳에만 실명 확인이 가능한 신(新)가상계좌가 제공되자 중소 업체들이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 정책이 신생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오히려 독과점만 키운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일부 업체는 실명제 가이드라인을 무시하고 영업을 계속하고 있어 가상화폐 실명제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상화폐 거래소 4곳만 신계좌… "정부가 독과점 부추긴다"
31일 가상화폐업계에 따르면 중소 거래소 업체들은 시중은행과의 신가상계좌 업무제휴에 실패하면서 일부 서비스를 중단하거나 사업을 포기하고 있다. 회원 수 50만 명인 코인네스트는 지난해까지 자체 법인계좌로 입출금을 했지만 최근 회원들의 현금 입금을 막았다. 회원 수 35만 명인 CPDAX(코인플러그)는 우리은행이 가상계좌 계약을 해지해 다른 제휴 은행을 찾고 있다. 사업을 포기하는 곳도 나왔다. 소규모 업체 코인피아는 원화 입금이 계속 지연될 경우 2월6일부터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했다.

업계에선 이대로 가면 중소형 업체들은 고사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KEB하나, 우리, 기업, 농협 등 주요 6개 은행이 신가상계좌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가상계좌를 내주는 곳은 신한, 농협, 기업은행 등 세 곳에 불과하며 추가 제휴 요청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블록체인협회에 따르면 신가상계좌를 이용하지 못하는 중소 거래소 회원 수는 80만 명(중복 포함) 수준으로 추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자금세탁 등 문제가 발생하면 제휴 은행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식으로 압박해 대형 거래소만 영업을 허용하는 편법 인가제를 운영하는 셈”이라며 “대형 거래소도 고객정보 해킹, 잦은 서버다운, 부정 거래 등 각종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는데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최근 ‘가상통화 자금세탁 방지 가이드라인’에서 업체 법인계좌를 통한 입출금을 단속하겠다고 경고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한 거래소 대표는 “회원 수십만 명이 거래하고 있어 서비스를 중단할 수도 없는데, 영업을 계속하면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모르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일부 업체는 법인계좌로 영업을 계속하기로 했다. 가상화폐 실명제는 법적 근거가 없는 가이드라인에 불과해 실제로 자금세탁이나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한 정부가 제재를 가하거나 은행이 서비스를 거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