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올해 공공기관 지정 대상에서 제외됐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도 자체혁신안 이행 등을 조건으로 공기업 지정을 피했다. 공공기관 지정을 둘러싼 기획재정부와 금감원 간 치열한 물밑 다툼에서 금감원 측이 ‘판정승’을 거뒀다는 말이 나온다.

◆금감원 “공공기관 수준 공시”

기재부는 31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2018년 공공기관 지정안’을 심의·의결했다.

공운위는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 여부와 관련해 “최근 금감원의 채용비리, 방만 경영 등에 많은 비판이 제기됨에 따라 공공기관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면서도 “올해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본격 이뤄질 예정임을 고려해 지정을 유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신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은 채용비리 근절대책을 마련하고 비효율적 조직 운영 등에 관한 감사원 지적 사항 등을 개선하겠다고 공운위에 약속했다. 또 앞으로 공공기관 수준으로 경영공시를 하고 경영평가에 기재부 공기업·준정부기관 경영평가단 중 1인 이상이 참여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방만 경영 논란' 금감원 공공기관 지정 불발
공운위는 기타공공기관에서 공기업으로 변경 지정될 가능성이 제기된 산은과 수은에도 현행 유지 결정을 내렸다.

공운위는 “두 은행은 산업경쟁력 강화와 구조조정을 위한 신속한 의사결정 및 대응을 위해 기타공공기관을 유지하기로 했다”며 “다만 사외이사 선임 시 외부인사 참여, 엄격한 경영평가 등 공기업 수준에 준하는 자체혁신안을 이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산은과 수은은 앞으로 자체혁신안 이행 실적을 공운위에 연 1회 이상 보고해야 한다.

◆금감원 방패 뚫지 못한 기재부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이 불발되면서 지난해부터 공공기관 지정을 강력하게 밀어붙인 기재부는 결과적으로 체면을 구기게 됐다. 기재부는 최근 금감원과 수은 등에서 불거진 채용비리 등을 거론하며 줄곧 공공기관 지정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금융감독기구의 독립성’을 방패로 내세운 금융위와 금감원의 논리에 밀렸다.

이런 결론은 지난 29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최종구 금융위원장, 최흥식 금감원장, 산은 회장·수은 행장 등과 전격 회동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당시 회동에서 김 부총리는 “금감원과 두 은행이 납득할 만한 자구책을 마련하면 공공기관 지정을 압박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 내부에서는 “문재인 정부 출범에 지분이 없는 김 부총리가 결국 ‘정권 실세’를 등에 업은 최흥식 금감원장의 위세를 꺾지 못한 것”이라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온다. ▶본지 1월30일자 A9면 참조

올해 공공기관 지정은 유보됐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운위 민간위원인 이상철 부산대 교수는 이날 브리핑에서 “공운위는 금감원 등의 자체혁신 추진 실적이 미흡하면 내년에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방침”이라며 “여기에는 금감원도 이해를 같이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이참에 아예 공공기관으로 지정될 수 없게끔 법으로 못을 박겠다”며 정치권 로비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25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선숙 국민의당 의원은 금감원을 공공기관 지정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을 골자로 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공운위는 이날 에스알(SR) 등 9개 기관을 기타공공기관으로 신규 지정했다. 대규모 채용비리로 홍역을 치른 강원랜드는 기타공공기관에서 공기업으로 변경 지정해 통제를 한층 강화했다.

오형주/박신영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