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꽃잎을 누르면 톡 하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얼굴(다이얼)을 드러내는 시계, 구슬이 헤엄치듯 다이얼 위를 돌아다니면서 표범의 얼굴을 그려내는 시계, 태양계 움직임을 고스란히 담아낸 시계….

올 한 해 명품 시계 트렌드를 보여주는 스위스 제네바 국제고급시계박람회(SIHH)에서 눈에 띄었던 ‘신상’ 시계들이다. 럭셔리 워치메이커들이 모인 리치몬트그룹 소속 브랜드와 독립시계 브랜드 등은 매년 1월 기술력과 예술감각을 집약한 신상 시계를 SIHH에서 선보인다. 예술성과 혁신적 기술을 겨루는 치열한 전쟁터이기도 하다.
[명품의 향기] 두께 2㎜… 세상 가장 얇은 피아제, 손목에 착 감기는 '스트랩 시계'도 인기
무엇보다 기술력을 응집시킨 시계들이 눈에 띄었다. 점핑 미닛, 점핑 아워 기술이 대표적이다. 점핑 아워란 59분에서 60분이 됐을 때 마치 점프를 하듯 핸즈(시곗바늘)가 움직이는 기술을 말한다. 시간 오차 없이 재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데다 그 움직임과 소리를 아름답게 만드는 게 쉽지 않다.

IWC는 올해 150주년을 맞아 ‘폴베버 150주년 헌정 에디션’을 한정판으로 선보였다. 크라운(용두)을 돌려 시간을 맞추다 보면 59분에서 60분으로 넘어갈 때 시간과 분이 동시에 바뀌면서 경쾌한 소리가 난다. 약간의 진동도 느낄 수 있다. 반클리프 아펠, 랑에운트죄네 등도 점핑 기술을 활용한 신제품을 내놔 눈길을 끌었다.

부품 두께를 얇고 정교하게 만든 브랜드도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얇은 시계’로 유명한 피아제 ‘알티플라노’는 올해 시계 두께를 2㎜까지 얇게 제작했다. 시중에 판매하는 매뉴얼(수동으로 태엽을 감는 시계)은 2㎜밖에 되지 않는다. 옆에서 보면 시곗줄과 거의 같은 두께다. 콘셉트 워치로 단 한 점 제작했을 뿐 판매하진 않는다. 이 정도로 얇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SIHH에서 공개했다.

손목에 착 감기는 팔찌 같은 여성 시계도 올해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까르띠에의 대표적인 인기 시계 ‘팬더’는 올해 두 줄, 세 줄짜리 스트랩을 처음 내놨다. 팔목에 자연스럽게 감기는 스트랩을 마치 팔찌처럼 착용하고 싶어 하는 여성 수요를 잡기 위해서다.

22년 동안 바젤월드에 참가했다가 올해 처음 SIHH로 자리를 옮긴 에르메스도 더블 스트랩 ‘케이프 코드’를 주력 상품으로 선보였다. 반클리프 아펠은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등 주얼리가 세팅된 다이얼을 시곗줄에서 돌려서 빼낸 뒤 브로치로 착용할 수 있게 제작하는 등 차별화에 공을 들였다.

시계업체들은 올해 명품시장이 작년보다 더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스위스시계산업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1~11월) 스위스산 시계 수출액은 172억1310만프랑(약 19조2000억원)으로 전년보다 3.2% 늘었다. 올해는 아시아와 중동을 중심으로 더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프랑수아 앙리 베나미아스 오데마피게 최고경영자(CEO)는 “기술력, 예술성, 디자인, 가격 등 다방면에서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것이 명품업체들의 과제”라고 말했다.

제네바=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