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큐 정현!’ ‘정현 효과’는 강력하고도 넓다. 불붙은 테니스 열풍은 한파마저 녹일 기세다. 고글로 상징되는 ‘정현 패션’은 옷으로, 시계로, 신발로 빠르게 번져가며 유통계를 뒤흔든다. 정현이 26일 호주오픈 4강전에서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에게 기권패했지만 멜버른 로드 레이버 아레나 경기장을 장식했던 호주오픈 스폰서 ‘KIA’는 엄청난 홍보 효과로 쾌재를 부르고 있다. 22세 청년 정현이 빚어낸 뜻밖의 선물, ‘1월의 크리스마스’다.
'정현 vs 페더러' 전 세계 3억명 봤다… "기아차 홍보효과 1조"
기아차 홍보 효과 1조원

기아자동차는 ‘정현 신드롬’의 최대 수혜 기업이다. 정현은 4강전에서 로저 페더러와 맞붙기 전까지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와 테니스 샌드그런(미국) 등 강호들을 차례로 완파했다. 그때마다 TV 중계 화면을 가득 메운 로고가 KIA였다. 기아차는 2002년부터 17년 연속 호주오픈을 후원하고 있다. “기아가 호주오픈을 오랫동안 후원했다는 점을 처음 알았다. 놀랍다”는 반응이 많았다. 한국인 정현, 한국 브랜드 기아, 마치 잘 짜여진 각본 같은 ‘각인 효과’였다.

홍보 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24일 8강전 당시 인터넷 중계 동시접속자 수는 최대 68만 명에 달했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동시접속자(약 80만 명)와 맞먹는 수치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정현의 8강전 TV 중계 시청률은 전국 평균 5.0%를 기록했다. 같은 시간대 지상파, 종편, 케이블을 포함해 최고 시청률이었다.

기아차는 호주오픈에 100억원 안팎을 후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내외 홍보 효과는 이 비용의 수십 배인 수천억원에 달한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호주오픈은 130여 개국에 실황 중계됐다. 이를 지켜본 세계 누적 시청자 수만 3억3000만 명에 이른다. 대회장을 직접 찾은 방문객도 73만 명을 넘었다. 경기 기간에 기아차 로고가 TV를 통해 노출된 시간은 총 150시간으로 집계됐다.

TV를 통해 기아차 로고가 노출된 홍보 효과만 줄잡아 6억~7억달러에 달할 것이란 게 업계의 관측이다. 여기다 브랜드 가치 상승과 대회 지원에 따른 간접 홍보 효과 등을 더하면 1조원에 가까운 효과를 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김도균 경희대 체육대학원 교수는 “호주오픈을 통해 전 세계에 기아차를 각인시킨 셈”이라며 “돈으로 가치를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큰 효과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의 호주오픈 4강전이 열린 26일 서울 퇴계로의 한 테니스용품 매장에서 한 소비자가 라켓을 고르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 @hankyung.com
정현의 호주오픈 4강전이 열린 26일 서울 퇴계로의 한 테니스용품 매장에서 한 소비자가 라켓을 고르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 @hankyung.com
유통업계, 테니스 관련 의류와 용품도 불티

정현이 입고, 차고, 신었던 이른바 ‘정현 아이템’은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16강, 8강, 4강 등으로 정현의 승리 신화가 거듭될수록 열기가 가열되고 있다.

G마켓의 최근 1주일(19~25일) 테니스 라켓 판매는 전주(12~18일) 대비 140% 급증했다. 테니스줄(거트)과 테니스화 매출 증가율도 각각 136%와 47%에 달했다. 옥션에선 같은 기간 테니스화 판매가 449%나 뛰었다. 테니스 티셔츠 및 재킷 매출은 전주 대비 두 배 늘었다.

11번가에서도 20~25일 정현이 사용하는 라코스테(의류) 매출이 전주 대비 11% 늘었고, 오클리(고글) 매출은 14% 증가했다. 또 테니스 의류(매출 증가율 179%), 장갑 등 테니스 용품(135%), 테니스 가방(55%) 등의 매출도 크게 뛰었다.

패션업계에도 정현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경기 때 입은 ‘2018 신상’ 라코스테 반팔 피케셔츠는 똑같은 게 없는데도 비슷한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라코스테는 2016년부터 5년 동안 정현을 후원키로 계약한 상태. 라코스테 관계자는 “다음달 1일부터 일부 매장에서 정현 웨어를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현 패션’으로 가장 큰 관심을 받는 브랜드는 나이키다. 16강전에서 조코비치를 상대로 승리할 때 신었던 신발이라는 소문이 나자 구매행렬이 이어졌다. TV 카메라가 정현의 발동작을 반복적이고도 집중적으로 보여준 덕이다. 주요 사이즈는 품절됐다.

‘제3의 전성기 올까’…테니스계 ‘정중동’

테니스 종목에 대한 관심은 전례 없이 뜨겁다. 테니스를 배우겠다는 초심자의 문의가 하루 종일 빗발치는 곳은 주로 실내 테니스장이다. 영하의 날씨 탓이다. 서울 강남의 코오롱스포렉스에서 테니스 강좌를 운영 중인 오세룡 코치는 “실내 코트도 겨울에는 문의가 거의 없는 게 보통”이라면서 “하지만 16강, 8강, 4강 이렇게 자꾸 올라간 이후부터는 하루 수십 통씩 전화가 온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 중에는 처음 테니스를 배우겠다는 10대 남자아이들이 가장 많다는 게 오 코치의 설명이다. ‘정현 키즈’가 생겨나고 있다.

테니스계는 ‘어게인 2000년!’으로 부풀어 오르는 분위기다. 이형택 전 국가대표선수(42)가 24살의 나이로 사상 최초의 그랜드슬램 16강(US오픈) 진출에 성공하면서 ‘테니스 열풍’을 몰고 온 해다. 곽용운 대한테니스협회장은 “1970~80년대 대학 캠퍼스에는 테니스 라켓을 들고 돌아다니는 것조차 모두 부러워할 정도였는데, 이때가 한국 테니스의 제1 전성기였다고 볼 수 있다”며 “이후 이형택이 활약한 2000년대 초반이 두 번째 전성기, 지금의 정현이 세 번째 전성기를 만들고 있다”고 기대를 나타냈다.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테니스 원로는 “한 사람의 스타만으로는 침체돼 있는 테니스계를 기사회생시킬 수 없다”며 “제2, 제3의 정현을 지속적으로 발굴해야 하고 기업의 적극적인 관심과 후원이 마중물 역할을 해야 정현 열풍이 부활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관우/장창민/안재광/최진석/민지혜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