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급전지시 공포… "납기 맞춰야 하는데 대낮에 공장 멈추라니"
정부가 사흘 연속 전력 수요감축 요청(급전지시)을 내리면서 산업현장에선 불안과 함께 불만도 커지고 있다.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인한 생산 차질과 야근 비용 증가, 납기 지연에 따른 손실 등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제도 도입 이후 2년 반 동안 세 차례에 불과하던 급전지시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인 지난해 5월 이후 10차례로 급증했다. 특히 1월이 채 지나지 않은 올해에만 3일 연속을 포함해 5번의 급전지시가 내려왔다. 이 때문에 정부의 급전지시를 거부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인천의 주물공장에서 쇳물을 받고 있다. 전기로를 쓰는 주물업체들은 급전지시로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우려했다.  /한경DB
인천의 주물공장에서 쇳물을 받고 있다. 전기로를 쓰는 주물업체들은 급전지시로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우려했다. /한경DB
“보상보다 피해 더 크다”

경남에 있는 열처리업체의 A사장은 26일 “이달에만 세 번(1월11, 25, 26일)이나 급전지시가 내려와 조업에 막대한 차질이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11일엔 한창 작업 중인 오후 3시30분부터 6시까지 급전지시가 내려왔고, 25일엔 아침에 출근해보니 오전 9시부터 11시30분까지라고 통보돼 있었다. A사장은 “오늘도 오전 8시 직원들이 모두 출근했는데 오전 9시부터 11시30분까지 전기를 끄라는 문자가 와 있었다”며 “회사를 운영하는 30년 동안 한 번도 없던 일”이라고 말했다.

기계부품용 주물제품을 생산하는 인천의 S사도 25일 오전 11시30분부터 2시간 동안 전기를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 회사는 전기로로 고철스크랩을 녹여 주물제품을 생산한다.

이 회사의 P사장은 “결국 낮에 생산해야 할 제품을 야간작업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며 “야근에 따른 인건비 상승, 저녁식사 준비 등 비용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처럼 한파로 급전지시가 자주 떨어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며 “정부와 계약을 맺은 것은 인센티브보다 전국적인 ‘블랙아웃’을 막아야 한다는 애국심에서 했는데 이제는 재고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의 급전지시는 2014년 11월 정부가 수요자원거래제도(DR·demand response)를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정부가 전력수요가 일시적으로 급증할 때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미리 계약된 업체에 일정 시간 전력 사용을 중단하도록 명령할 수 있는 제도다. 정부와 계약하는 업체에는 보상이 따른다. 급전지시로 전력사용을 줄이면 인센티브도 준다.

그러나 일부 업체는 잦은 급전지시로 손실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금속가공업체를 운영하는 C사장은 “금속을 녹이려면 전기로가 일정 온도 이상 가열돼 있어야 하고 전기로 온도가 떨어지면 불량 제품이 나온다”며 “2시간 급전지시를 따르면 2시간만 조업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전기로 온도를 다시 올리는 시간 등도 포함해 반나절을 일을 못하게 되고 불량이 발생할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업인들은 급전통보 방식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A사장은 “사전통보라도 제대로 했으면 사전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 텐데 한 시간 반 전에 문자 한 통만 딱 보내준 게 전부였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사업장에도 그날그날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정부가 이렇게 급전지시를 하면 사업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며 “작업장의 현실을 생각해 하루 전이나 적어도 3~4시간 전에 전화 한 통 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고 반문했다. 정부는 산업현장의 이런 불만을 감안해 최근 ‘하루 전 예고제’를 도입했으나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납기 맞추려 급전지시 거부도

인천에서 비철금속을 가공해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K사는 25일 낮 정부로부터 2시간 동안 급전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이 회사의 L사장은 “수출품 납기를 지켜야 하는데 도저히 생산라인을 세울 수 없었다”며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2시간 공장을 세웠다가 손실분을 만회하려면 적어도 3시간 정도 잔업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업들은 잦은 급전지시에 불안해하고 있다. 인천 주물공단에서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D사의 R사장은 “한때 DR계약을 맺을까 고민했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은 게 천만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남의 열처리업체 H사의 L사장은 “우리 같은 기업은 늘 생산직 인력난에 허덕이기 때문에 대낮에 공장을 세우면 생산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는다”며 “언젠가 ‘풍부한 전기, 마음 놓고 쓰자’는 정부의 구호도 있었는데 이제는 옛날 얘기가 돼가고 있다”고 씁쓸해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조아란 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