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오른쪽 두 번째)가 24일 ‘4차 산업혁명과 혁신성장’을 주제로 한 정부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이 총리,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최종구 금융위원장,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연합뉴스
이낙연 국무총리(오른쪽 두 번째)가 24일 ‘4차 산업혁명과 혁신성장’을 주제로 한 정부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이 총리,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최종구 금융위원장,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연합뉴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가만 놔두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진정한 혁신은 기업들의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에서 나오기 때문이죠. 정부가 기업을 돕겠다며 도리어 발목을 잡는 경우가 허다합니다.”(박종환 카카오 모빌리티 이사)

[2018 부처 업무보고] 장관들 혁신성장 대책 쏟아내자… 스타트업 "놔두는 게 도와주는 것"
‘4차 산업혁명과 혁신성장’을 주제로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정부 업무보고 회의.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회의에서 기획재정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금융위원회·국무조정실 등 6개 부처 장관이 혁신성장 정책을 발표했지만, 정작 관심은 토론 시간에 쏟아진 민간 참석자들의 발언에 집중됐다.

◆“‘생존 경쟁’이 혁신 원동력”

2015년 내비게이션 앱(응용프로그램) ‘김기사’를 카카오에 626억원에 매각해 화제를 모은 박종환 카카오 모빌리티 이사는 “살기 위해 창업했고 살아남기 위해 고민을 했지 뭔가 대단한 혁신을 이루려고 노력한 적은 없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김기사의 성공비결은 기존에 있던 TTS(문자음성 자동변환 기술)를 돈 주고 사는 대신 사람 목소리를 직접 일일이 녹음한 데 있었다”며 “그 과정에서 혁신이란 단어를 떠올린 적은 없었다”고 부연했다. 진정한 혁신은 정부가 기업에 혁신을 강요하거나 부추겨서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1996년 게임업체 네오위즈를 창업해 대표적인 ‘벤처 1세대’로 꼽히는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블루홀 의장)도 박 이사의 말에 공감을 표했다. 장 위원장은 “정부가 스타트업에 관심을 갖는 순간 대기업과 기득권 등 이해관계자들의 시선도 함께 집중된다”며 “그 순간 스타트업의 혁신은 꺾이고 만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스타트업들이 성장하기 전까진 (정부가) 가만 놔두고 조금 늦게 관심을 가져주면 어떨까 싶다”고 덧붙였다.

가상현실(VR) 게임 개발업체인 푸토엔터테인먼트의 홍철운 대표 역시 “정부가 최근 VR에 대해 매우 많은 관심을 쏟아 부담이 된다”며 “과기정통부도, 문화체육관광부도 앞다퉈 VR 업체를 돕겠다고 나서 도대체 어디에 줄을 서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규제 부작위’도 검토 필요”

이 총리는 기업인들의 지적을 경청한 뒤 “민간의 혁신 노력을 우리가 결코 방해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기업들에 억지로 혁신 목표를 세우라 요구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다.

규제개혁에 대해선 ‘규제 부작위(不作爲)’라는 자신만의 구상을 처음 언급하기도 했다. 이 총리는 “신산업에 한해 현재 있는 규제를 정부 스스로 무력화해 아예 집행하지 않는 일종의 부작위 방식을 연구해보면 좋겠다”며 “행정부가 규제 부작위를 범해도 훗날 성과를 거두면 책임을 묻지 않는 방안을 관련 부처가 검토해달라”고 주문했다.

장관 사이에선 신산업 육성과 규제 완화로 피해가 불가피한 기존 산업과 이해당사자에 대해 적절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신산업 관련 기득권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선 합리적 보상을 해주는 ‘스몰딜’ 논의를 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도 “택시 등 전통적인 운수업을 차량 공유 등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 도입에 맞춰 어떻게 변화시킬지 고민 중”이라고 털어놨다.

이날 산업부 등 세 개 부처가 각기 보고한 자율주행자동차 육성정책을 두고선 부처 간 미묘한 경쟁심리도 엿보였다.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지금까지 자율차는 산업부와 국토부, 과기정통부 등이 각기 독자적으로 추진하다 보니 잘 안 됐다”며 “이번에는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과 김현미 국토부 장관께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정식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은 “자율차 관련 운영이나 인프라 조성 등은 국토부가 중심이 돼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김현미 장관은 “‘규제 샌드박스’ 등 국민이 알기 어려운 용어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유영민 장관은 “공무원들이 정책 마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국회와 청와대, 총리실부터 자료 요구를 줄여달라”고 건의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