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회추위 접촉, 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어"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뭐라도 말 했다가 (말이) 잘못 전달되면 어떻게 합니까.”

15일 오전 8시께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기자를 만난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사진)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차기 회장 선임을 위한 면접에 응할 예정이냐’는 질문에도 “회추위(회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결정할 사항”이라며 최대한 말을 아꼈다.

김 회장에게 목적지를 물으니 서울 명동의 하나금융 본사를 얘기했다. 동승해도 되는지 여부를 묻자 흔쾌히 좌석을 내줬다. 차량이 성동구의 중저층 아파트 단지와 상가건물을 지나는 동안 잠시 침묵하던 김 회장은 이내 언론 노출을 꺼린 이유를 설명했다.

“최근 40여 일간 아무도 만나지 않고 침묵하며 지냈습니다. 팩트 한 가지를 얘기하면 기사들이 백 배, 천 배로 불어납니다. 힘들죠.”

김 회장이 얘기한 ‘팩트’란 지난달 4일 서울 명동 사옥에서 몇몇 기자들이 전직 최고경영자(CEO) 및 임원들의 경영 개입과 관련해 건넨 질문에 “안타깝다”고 밝힌 부분을 말한다. 해당 발언과 관련된 기사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전직 임원의 영향으로 금융당국에서 김 회장 연임을 저지하기 위해 하나금융 압박에 들어갔다는 의혹성 기사에까지 당시 발언이 고스란히 인용됐다. 난감해진 김 회장은 이후 한동안 언론을 대상으로 한 일체의 언급을 삼갔다.

“연임 관련한 내용은 최대한 말을 아끼려고 합니다. 누가 이렇고 누가 저렇고 하는 식의 얘기를 함부로 하지 않으려고 해요. (금융당국과)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부담스러워서 그렇습니다.”

차량이 성동구에서 용산구 방면으로 이동할 무렵 김 회장은 최근 추진 중인 사업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해외 시장에 전략적 투자자로 나서는 것 이외에 지난해 말 선보인 블록체인 사업망처럼 핀테크(금융기술) 분야를 중점적으로 강화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업들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내용도 토로했다. 김 회장은 “일을 잘해보고 싶어도 눈치가 보여서 본격적으로 나서는 것이 어렵다”면서 “연구 중인 사업이 많아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야기하는 내내 금융당국의 반응을 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요즘 같이 시끄러울 때 말 한마디 잘못하면 큰일 난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15일 서울 명동 하나금융그룹 본사에 그룹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하나금융그룹 차기 회장 선임을 놓고 금융당국과 하나금융 간 갈등이 이날 일단락됐다. 허문찬 기자 sweat@hakyung.com
15일 서울 명동 하나금융그룹 본사에 그룹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하나금융그룹 차기 회장 선임을 놓고 금융당국과 하나금융 간 갈등이 이날 일단락됐다. 허문찬 기자 sweat@hakyung.com
차량이 남산 1호터널을 막 빠져 나왔을 때 회추위와 관련한 얘기가 나왔다. 김 회장은 “회추위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는 모른다”며 선을 그었다.

“제가 회추위 접촉은 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습니다. 상황이 이런데 그럴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그냥 물 흘러가듯 상황을 맞이하려 합니다. ‘가다가 안 되면 할 수 없는 거다’라는 마음으로 가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출근 내내 흔들리지 않던 김 회장의 평정심은 금융당국에서 최근 하나금융을 대상으로 아이카이스트 대출의혹 및 은행권 채용비리 조사를 줄줄이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조금 무너지는 듯 보였다. 김 회장의 입에서 무거운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검사가 거의 매일 있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검사받는) 제 입장에서 이걸 갖고 뭐라 하기는 참 그렇습니다만.”

김 회장은 얼핏 미소지었다. 자조와 씁쓸함이 묻어났다.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고, 자동차는 오가는 차량으로 북적거리는 을지로 한복판에 들어섰다.

김 회장에게 최근 관심 있는 산업 분야를 물었다. 바로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일반적인 개념으로 해당 분야에 접근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김 회장은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는 단순히 지식과 기술이 뛰어난 사람이 성공하는 게 아니더라”며 “무엇보다 이 산업이 인간에게 도움이 돼야 한다는 사명을 갖고 접근했을 때 빛을 발하는 것 같다”며 신조를 밝혔다. 지난 1일 신년사에서 “사람 중심의 기업문화를 만들겠다”고 선포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였다는 설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 회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몸담고 있는 금융산업의 발전”이라고 했다.

금융당국은 지난 14일 하나금융 회추위에 16명의 회장 후보 면접 일정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당국에서 하나금융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각종 검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회추위는 “이미 충분히 금융당국의 뜻을 반영해 회장 후보 선정을 하고 있다”며 거부했다.

자동차가 명동 하나금융 본사 맞은편에 멈춰섰다. “어려운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자 김 회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내 “사실은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며 “할 만큼 했기 때문에 되면 되는 거고, 말면 마는 거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목소리는 힘이 없었고 피곤함도 묻어났다.

김 회장은 이날 예정대로 회장 후보 면접에 참석했다. 하나금융 회추위는 16일까지 내·외부 후보 면접을 마친 뒤 3~4명의 쇼트리스트를 발표할 예정이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