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 FTA' 때문에 한국서 미국차가 안 팔린다고?
“한국 정부가 미국산 자동차에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고, 이 때문에 미국산 차의 한국 판매율이 저조하다.”

지난 5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1차 협상에 앞서 윌버 로스 미국 상무부 장관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수차례 언급한 발언이다. ‘불공정한 한·미 FTA’와 비(非)관세 장벽 때문에 한국에서 미국산 자동차가 안 팔린다는 주장이다. 약간의 감정공세까지 섞인 미국의 이 같은 압박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것일까. 미국 측 주장의 허실을 짚어봤다.
'불공정 FTA' 때문에 한국서 미국차가 안 팔린다고?
(1) FTA 때문에 미국산 자동차가 고전?

미국이 한국과의 자동차 무역에서 적자를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미 FTA 발효 전과 후를 비교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발효 이후 미국산 자동차의 국내 판매량은 비약적으로 늘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가 8일 집계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미국산 자동차는 국내에서 2만19대가 팔렸다. 전년 대비 9.5% 증가했다. 한·미 FTA 발효 직전인 2011년 판매량(8252대)과 비교하면 142.6%나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전체 수입차 판매 증가율(121.9%)보다 증가폭이 크다. 이 기간 미국 차의 한국 수입차 판매시장 점유율도 7.9%에서 8.6%로 늘었다.

'불공정 FTA' 때문에 한국서 미국차가 안 팔린다고?
한국무역협회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對美) 승용차 수출액은 2011년 86억달러에서 2016년 155억달러로 80.2% 늘었다. 반면 수입액은 3억달러에서 17억달러로 5배 이상으로 뛰었다. 한국과 미국의 자동차 무역 불균형이 양국 시장 규모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FTA가 오히려 그 격차를 줄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그동안 수치 변화를 분석해 보면 한·미 FTA로 이득을 본 쪽은 미국”이라고 말했다.

(2) 비관세 장벽이 미국차 판매를 막는다?

미국 측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한국의 비관세 장벽은 △연비 규정 △수리이력 고지 규제 △안전규제 등이다. 연비 규정을 놓고 보면 한국(L당 17㎞)이 미국(L당 16.6㎞)보다 까다로운 건 사실이지만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평균 수준이다. 유럽연합(L당 18.1㎞)보다 약하고, 일본(L당 16.8㎞)과도 큰 차이가 없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연비 규제 차이가 L당 1㎞ 미만이면 큰 의미가 없다”며 “미국과 한국의 규제 정도가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수리이력 고지 제도 역시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제도는 자동차가 출고된 이후 소비자에게 인도될 때까지 문제가 생겨 수리를 하면 그 이력을 남겨야 하는 규제다. 미국 측은 장거리 운송을 해야 하는 수입차 제조사에 부담이 큰 규제라고 반발한다. 하지만 미국 36개 주에서도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차량도 같은 규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차량에 문제가 생겨 수리를 했는데 그 이력을 남기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3) 속내는 미국 투자유치 확대?

미국 자동차업계 일각에서는 자동차 수입 관세를 부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미 FTA의 혜택이 현대·기아자동차에만 돌아간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역시 현실을 도외시한 주장이라는 것이 국내 자동차업계의 설명이다. 현대·기아차가 미국에서 판매하는 차량 중 약 60%는 현지 공장(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및 기아차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된다. 관세가 부활해도 피해가 크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오히려 미국 제너럴모터스의 계열사인 한국GM이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장 많이 수출되는 자동차 제품은 한국GM의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트랙스다.

이 때문에 미국이 원하는 건 따로 있다는 얘기도 있다. 김필수 교수는 “한국 기업의 미국 시장 투자 확대와 한국 회사의 미국산 부품 사용비율 확대가 미국의 최종 목표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