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포퓰리즘·관료주의 '함정'… 3만달러서 추락한 남유럽서 배워야
“공짜는 없었다. 복지를 늘리기 위해 우리가 낸 빚은 국가 재정을 잠식했고 미래 세대에 짐을 지웠다. 스페인이 다시는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스페인 경제학자 페드로 슈와르츠)

스페인은 2000년대 부동산 호황과 저금리에 힘입어 가파른 성장세를 탔다. 2007년 1인당 국민소득(GNI) 3만달러를 돌파한 데 이어 이듬해 3만5000달러 벽도 뚫었다. 사회당 정권 10년간 공공지출이 큰 폭으로 확대되고 지방자치단체들은 표심을 얻기 위해 앞다퉈 채권을 찍어내 공공사업을 펼쳤다. 17개 지자체는 200조원이 넘는 빚을 내 경쟁하듯 학교와 양로원, 공항을 지었다. 비행기 한번 못 띄운 ‘유령공항’이 7곳에 달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재정위기가 불거지면서 스페인의 국민소득은 2012년 3만달러 밑으로 떨어졌고 지난해 2만6000달러 선까지 밀렸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세계적 석학인 페드로 슈와르츠가 언론 기고를 통해 언급한 내용처럼 포퓰리즘에 기댄 성장은 ‘허상’이었다.

선진국 문턱에서 포퓰리즘에 발목

한국경제신문과 현대경제연구원이 4만달러 돌파나 안착에 실패한 국가 5곳(일본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슬로베니아)을 선정해 조사 분석한 결과 단기 급성장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쳐줄 사회적 인프라가 부족한 것이 실패의 원인 중 하나였다. 일본과 이탈리아는 한때 4만달러를 넘었지만 다시 3만달러대로 내려앉았고 스페인 그리스는 3만달러대에서 각각 2만6000달러, 1만8000달러까지 추락했다.

이들 국가는 모두 기대수명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본과 이탈리아 스페인의 기대수명은 세계 2~4위다. 그리스 슬로베니아도 20위권에 있다. 의료 복지와 교육, 산업 인프라 시설이 유럽의 평균 수준을 뛰어넘는다. 하지만 정부의 관료주의와 포퓰리즘에 기반한 과도한 재정투입, 취약한 사회 인프라가 성장세를 가로막았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 경쟁력 지수를 보면 문제가 여실히 드러난다. 정책 투명성 등을 측정하는 ‘제도’부문에서 미국 독일 영국 등 3개국의 평균 점수는 7점 만점에 5.4다. 반면 남유럽 3개국의 평균은 3.8에 그친다. 세계경쟁력지수의 9개 주요 척도 중에서 선진국들과의 차이가 가장 큰 분야다.

남유럽 3개국은 세부적으로 정책 편향성, 과도한 규제, 정책 투명성 등에서 대부분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국가 경쟁력은 각각 34위, 43위였지만 이들 항목에서는 대부분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노동, 금융, 재정건전성 분야에서도 대부분 항목이 후진국 수준으로 평가받았다.

일본은 국가 경쟁력이 9위였지만 재정건전성, 노동, 금융 항목은 4점대로 중진국 수준에 그쳤다. 정부 재정은 137위, 노동시장 유연성은 113위로 평가됐다.

산업에 기댄 성장 한계 온다

4만달러 돌파 실패국들이 취약한 항목은 공교롭게도 한국의 구조적 문제로 지적돼온 분야다. 한국은 재정건전성을 제외한 제도, 노동, 금융 등의 항목에서 선진국보다 남유럽 3개국 평균 수준에 가깝다. 정치 신뢰성(90위), 정부규제(95위), 노사관계(130위), 노동시장 유연성(112위) 등이 대표적이다. 출산율, 여성 경제 참여율 등 사회적 인프라를 나타내는 항목은 오히려 이들 국가보다 떨어진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이 수출 호조와 환율 하락에 힘입어 3만달러를 돌파하더라도 이런 구조적 문제점을 개선하지 못하면 3만달러대에 안착하지 못하고 다시 2만달러대로 추락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지속성장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8개국 중 24위에 그치는 등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세부 항목을 보면 혁신성장도 20위권에 그치지만 특히 심각한 분야는 안정성장(23위)과 조화성장(27위)이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