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유통사들은 모두 “공격 앞으로”를 외쳤다. 면세점을 따내기 위해, 편의점을 늘리기 위해, 이커머스 선점을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올해는 완전히 달라졌다. 철수와 폐점이란 단어가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규제도 성장을 막았다. 유통업계 1위 롯데는 수난의 한 해를 보냈다. 모바일 시대의 최대 수혜자이던 쿠팡과 11번가도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국내 유통사들은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전문점으로 새로운 길을 찾았다. 중국 대신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로 항로를 바꿨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이 와중에도 모험을 이어갔다. 2017년 유통업계 1년을 정리해봤다.
유통업체, 중국시장 철수 '쓴맛'… 몸집 경쟁 대신 전문점·복합몰로 승부
◆롯데의 수난…그리고 희망

롯데그룹은 수난의 한 해를 보냈다.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롯데마트 롯데면세점 등은 2조원의 손실을 입었다. 정치적 이유에서 시작된 재판으로 신동빈 회장과 그룹 경영진은 1년 내내 서초동을 오갔다. 신 회장은 53회 재판에 출석했다. 지난 22일 재판에서 ‘총수 부재’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한 게 위안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희망도 봤다. ‘평창 롱패딩’과 스니커즈가 ‘대박’을 냈다. 온라인에 밀려 고전하는 백화점이 어떻게 활로를 찾아야 할지 실마리를 찾게 해줬다. 롱패딩에 이어 내년 초 판매하는 스니커즈(5만원)의 사전 예약 수량은 20만 켤레를 넘어섰다. 롯데마트는 1층에 판매대를 없애고, 소비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실험을 통해 대형마트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계속되는 정용진의 모험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모험은 올해도 계속됐다. 편의점 위드미의 간판을 모두 이마트24로 바꿨다. 다른 편의점과 달리 이마트의 노브랜드, 피코크 등의 제품을 중심으로 매장을 꾸몄다. 차별화가 아니면 후발주자가 살아갈 수 없다고 판단한 데 따른 모험이다. 지난 8월 문을 연 복합쇼핑몰 스타필드고양은 정 부회장이 내놓은 또 하나의 도전이다. 작년 문을 연 스타필드하남을 업그레이드하면서 그는 “경쟁 상대는 다른 유통매장이 아니라 ‘고객의 집’”이라고 했다. 하루종일 체류하며 먹고 놀고 쇼핑하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이다.

지난 8월 그가 “연말에 깜짝 놀랄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허언이 아니었다. 신세계그룹은 내년 1월부터 주 35시간 근로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국내 대기업 중 근로시간을 법정기준(40시간) 미만으로 단축한 첫 사례다.

◆중국 철수와 동남아 확장

중국은 올해 유통사들의 ‘무덤’이 됐다. 이마트는 중국 진출 20년 만에 전면 철수했다. 중국에서 112개 마트와 슈퍼를 운영 중인 롯데도 이들 매장을 모두 팔기로 했다. 사드 배치 이후 이뤄진 노골적인 보복과 중국 시장의 특수성을 넘지 못했다.

이들은 눈을 동남아와 다른 아시아 국가로 돌렸다. 롯데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대대적으로 투자했다. 베트남 투티엠 신도시에 백화점, 쇼핑몰, 상업시설, 호텔 등이 어우러진 복합단지를 짓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투자비만 2조원이다. 인도네시아에선 3조원 이상을 투입해 석유화학 콤플렉스 단지 건설을 추진 중이다. 이마트는 몽골에 2호점을 내면서 시장 선점에 나섰다. 노브랜드 피코크 데이즈 등 자체브랜드(PB) 상품을 동남아 지역에 수출도 하고 있다.

◆한계 드러낸 이커머스

잘나가던 이커머스업체들은 혼돈의 한 해를 보냈다. 오픈마켓 11번가는 적자가 커지자 투자자를 찾아 나섰다. 롯데 신세계 등이 거론됐지만 협상은 불발됐다.

‘로켓배송’으로 차별화를 꾀한 쿠팡도 내홍을 겪었다. 막대한 적자로 구조조정에 나섰다. 배송을 담당하는 ‘쿠팡맨’은 집단 반발했다. 올해 “1만5000명을 고용하고 이 가운데 60%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김범석 대표의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두 회사 모두 앞으로 어떻게 수익을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출점 규제와 전문점의 부상

규제가 발목을 잡았지만 유통업체들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백화점과 마트는 출점 규제, 영업 규제 등에 막혀 새 매장을 여는 것을 포기했다. 신세계는 경기 부천 영상복합단지에 백화점을 짓기로 한 계획을 백지화했다. 서울 상암동 롯데몰은 4년째 상인들의 반발과 규제로 표류 중이다.

이들은 전문점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신세계는 화장품 편집숍 ‘시코르’, 가전 전문점 ‘일렉트로마트’ 등 올해만 116개 전문점 문을 열었다. 롯데는 20~30대를 타깃으로 한 미니 백화점 ‘엘큐브’를 5곳으로 확대하며 새로운 시도를 했다.

류시훈/안재광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