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조선업계의 실적 전망은 빙하기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 2년간 지속된 수주 가뭄의 영향이 내년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이 지난 6일 올해와 내년까지 7300억원의 영업손실을 예고하며 내년에 삼성전자 등 대주주가 참여하는 1조5000억원의 유상증자를 하겠다고 발표한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중공업그룹이 26일 발표한 현대오일뱅크 기업공개(IPO), 현대중공업 1조2875억원 유상증자도 이 같은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삼성 측과 다른 점은 유동성 확보 방안이 훨씬 더 과감하고 선제적이라는 데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상 최대 실적을 구가하고 있는 현대오일뱅크는 그룹 최후의 안전판으로 여겨져온 알짜 계열사다.
현대중공업, 선제적 IPO·유상증자… 내년 '일감 절벽' 뛰어넘는다
그동안 IPO 관련 소문이 자본시장에 숱하게 나돌았지만 현대중공업그룹은 그때마다 “사실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그럼에도 이번에 기업공개를 결정한 것은 내년에 유동성을 보강하는 차원을 넘어 현대중공업의 재무구조를 무위험 상태로 만들어놔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시장의 신뢰가 살아있어야 2019년 이후 올해의 공격적인 수주를 발판으로 한 경영실적 개선이 가시화될 것으로 본 것이다.

현대중공업의 올해 조선해양부문(삼호중공업, 미포조선 포함) 수주는 지난해(63억달러)보다 58.7% 증가한 100억달러에 이른다. 내년엔 132억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매출은 올해 15조원에서 내년에 13조원대로 떨어지고 영업이익도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게 회사 측 전망이다. 경영환경도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올해 수주물량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다소 수익성이 떨어지는 일감을 확보한 데다 인력 구조조정 등도 정부와 정치권의 견제로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그룹 컨트롤타워를 맡고 있는 권오갑 현대중공업 부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바꾼다”는 과감한 발상에 따라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일단 현대오일뱅크 IPO와 현대중공업 유상증자 등을 통해 현대중공업을 포함한 주요 계열사의 은행 차입금을 대거 상환하기로 했다.

현대중공업의 지난 3분기 말 기준 은행 대출 및 회사채 등을 포함한 순차입금(차입금-보유현금)은 9649억원에 이른다. 이를 내년 2분기까지 순현금 5000억원으로 돌려놓는 게 회사 측 목표다. 이 경우 연결기준 부채비율은 87%에서 60%대로 떨어질 전망이다. 회사 관계자는 “그동안 금융권 부채 때문에 경영계획을 놓고 채권단의 간섭을 받아왔는데, 앞으로 경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2019년부터 조선업황이 완전히 회복되면 업계 최초로 무차입 경영을 실현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또 내년 상반기까지 현대미포조선이 보유한 현대중공업 지분 4.8%를 매각해 현재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고리를 끊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현대중공업그룹은 권 부회장 취임 후 2015년부터 시작한 사업구조개편 작업을 3년여 만에 마무리하게 된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