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세계 2위 담배 소비국이다. 시장이 크고 매력적이지만 리스크도 많다. 정부가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각종 규제를 내놓고 있고, 일찌감치 시장을 선점한 글로벌 담배회사들 때문에 후발주자가 시장을 공략하기도 쉽지 않다. 1996년 러시아에 진출한 KT&G 역시 처음엔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담배시장은 재팬타바코, 필립모리스 등 글로벌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었다.

KT&G는 정공법 대신 틈새시장 공략을 택했다. 고(高)타르 제품 위주인 러시아에서 ‘저(低)타르’와 ‘초슬림’이라는 새로운 콘셉트로 승부했다. 새로운 담배시장을 개척하고 꾸준히 신제품을 출시한 결과 KT&G는 올해 정체된 러시아 담배시장에서 30% 가까이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를 비롯해 중동, 인도네시아 등 신흥시장에서의 판매 호조로 올해 수출은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모스크바 구멍가게도 '에쎄'… 동토 녹인 KT&G
KT&G는 올해 3분기 누적 러시아 시장 담배 판매량이 25억8000만 개비로 집계됐다고 26일 밝혔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31% 늘었다. 올해 전체로도 29%가량 늘어난 약 36억 개비로 추정된다. 러시아 매출을 이끄는 효자 상품은 2014년 출시된 에쎄 체인지다. 슬림형 담배 에쎄에 캡슐을 추가해 이를 터뜨리면 새로운 맛을 내는 제품이다. 3년 전 출시한 이 제품은 작년에만 6억7000만 개비가 팔렸다. 전년보다 네 배 늘었다. 깨물면 ‘탁’ 터지는 캡슐 때문에 소비자 사이에서 ‘버튼 담배’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러시아 진출 후 수년간 고전하던 KT&G는 2002년 에쎄를 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나타냈다. 슬림형 담배는 2000년대 초만 해도 러시아에선 찾아볼 수 없던 제품이다. 하지만 이제는 모스크바 거리에서 에쎄를 입에 문 흡연자를 쉽게 볼 수 있다. 모스크바 담배 판매점의 89%가 에쎄를 취급한다.

KT&G는 러시아에서 총 12종의 에쎄 담배를 생산·판매하고 있다. 에쎄 인기가 높아지면서 2010년 러시아 칼루가주에 1억달러를 투자해 현지 공장도 세웠다. 김영훈 KT&G 러시아법인장은 “저타르 초슬림 캡슐제품 등 소비자가 새로운 것에 관심을 두는 걸 파악해 발빠르게 제품을 내놓은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내년부터 러시아 주변국으로의 무관세 수출이 가능해지면서 러시아 현지에서의 수출도 본격화할 것으로 KT&G는 기대하고 있다. 러시아가 주변 국가들과 맺은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협정에 따라 내년부터 러시아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무관세로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등 주변국에 수출할 수 있다. 수출 첫해인 내년에만 러시아 법인에서 약 10억 개비를 수출할 수 있을 것이란 게 KT&G의 설명이다.

KT&G 해외 판매는 2002년 민영화를 기점으로 크게 늘었다. 지난해 487억 개비를 판매해 9414억원의 해외매출을 냈다. 올해 수출은 1조원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